수필 임진왜란
명나라에서 지원군이 도착했다. 이 과정에서 숨은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들추어 본다.
명나라 병부의 자문(咨文)은 조선 파병의 기본 입장을 보여준다. 『선조실록』 선조 30년 4월 21일(신사) 기사 일부를 발췌하여 묵상해 본다.
“대저 천하의 일이란 이름은 ‘절약한다.’ 하면서도 도리어 허비가 많고 이름은 ‘허비한다.’ 하면서도 절약이 갑절일 수도 있으니, 곧 오늘날 구원병을 보내는 것의 지속(遲速)이 그러하다.”
‘천하의 일’이란 조선에 구원병을 파병하는 일이다. 파병하는 비용과 조선을 빼앗기는 것을 비교하고 있다. 어느 것이 ‘자기들에게 이익이 될까?’를 따지고 있다. 파병의 명분은 조선을 지원한다는 것이지만 실상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결정된다. 이것이 국제 사회의 질서이다.
“군병이 늦게 출발하면 행량은 좀 절약되겠지만 만약에 왜가 조선을 탈취하면 조선 땅이 일본에 보태질 것은 뻔한 일이요, 옛것을 다시 회복하기도 어렵거니와 회복한다 해도 힘이 갑절이나 들게 되고 그 비용도 적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명에 미칠 화 또한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는 파병의 시기를 말하고 있다. 조선이 항복하기 전에 파병해야 한다.
일본이 북쪽으로 밀고 올라오면 선조는 더 피할 곳이 없다. 명나라로 망명을 하든지 아니면 항복해야 한다. 그 절체절명의 시기에 명의 구원병이 도착했다.
매사에 때가 있다. 봄에는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는 거둔다. 그때를 놓치면 안 된다. 명나라 지원군이 알맞은 때에 도착하여 일본의 사기를 꺾는데 한몫했다.
1592년 7월 명나라는 요동의 부총병 조승훈(祖承訓)의 지휘하에 정병 3천 명을 파견했다. 조승훈은 요동 동령위(東令衛)에서 복무했었다. 그것이 1차 파병의 원인이다.
명나라는 왜구를 깔보았다. 조선의 심각한 사정도 몰랐다. 그래서 병사를 3천만 파견했다. 조승훈도 일본군을 쉽게 생각하고 평양성을 공격했다. 그러나 명의 부장 사유를 포함해 절반이 넘는 명군이 전사했다. 조승훈은 압록강을 넘어 본국으로 도주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넌다.’는 속담이 있다.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그해 12월, 명은 2차 구원병을 파견했다. 이여송을 도독으로 하여 5만 대군을 파견했다. 이여송은 보바이의 난(哱拜之亂)을 평정하여 명성을 높인 장수이다.
1593년 1월, 조명연합군은 혹한을 무릅쓰고 평양성의 공격에 나섰다. 성안에는 일본군 1만 5천여 명과 강제 동원된 조선인이 진을 치고 있었다. 불랑기포로 무장한 명군, 유격 전술을 날렵하게 전개한 승병들의 활약에 밀려 일본군은 토굴로 들어가 조총을 쏘며 저항했다. 외교에 능한 왜장 고니시는 ‘후퇴하는 길을 막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고, 이여송은 그에 응하였다. 마침내 조명연합군은 평상성을 탈환했다. 명군이 파견되어 첫 번째 승전이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1월 18일 선조는 의주를 떠나 남하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여송은 승리에 자만했다. 그 결과 1593년 2월 27일(음 1월 27일), 벽제관 전투(碧蹄館戰鬪)에서 대패했다. 벽제관은 현재의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 일대이다.
이후 이여송은 소극적으로 활동했다. 그러는 동안 무명(無名)의 조선 여인을 통해 아들을 낳았고, 1593년 말에 철군했다. 그의 후손이 거제시에 살고 있다.
명나라 군대의 참전은 일시적으로 조선군의 사기를 높였다. 그러나 명군의 폐해는 적지 않았다. 민간인 사이에서 ‘명나라 군대가 포악하다.’라는 소문이 퍼졌고, ‘명군은 참빗, 왜군은 얼레빗’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참빗은 빗살이 가늘고 촘촘한 대빗을 말한다. 우리 속담에 ‘참빗으로 훑듯’이란 말이 있다. 남김없이 샅샅이 뒤져내는 모양을 비유한 말이다. 얼레빗은 빗살이 굵고 성긴 큰 빗을 말한다. 그러니까 일본군에게 당한 피해도 컸지만, 명군에게 당한 피해가 훤씬 더 컸음을 의미한다.
『연려실기술』에 그것을 증명하는 내용이 있다.
“명군이 들어가는 마을에서는 소나 돼지, 개와 닭 같은 가축이 전부 없어진다. 명군은 닭을 가장 즐겨 피 한 방울이라도 버리는 것이 없다.”
명군은 조선의 해방군인가? 점령군인가?
조선의 백성은 참 불쌍하다. 평화 시에는 탐관오리들의 등쌀에 시달렸고, 임진왜란 중에는 집에 불을 지르고 식량을 빼앗아 가는 일본군의 행패로 눈물을 삼켜야 했었는데, 지원군으로 들어온 명군의 행패는 더욱 심각하여, 가축 하나 남김없이 싹 쓸어가고, 애매한 백성의 목숨까지도 빼앗아 갔다. 불쌍한 조선의 아낙네들은 하늘을 향해 가슴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