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임진왜란
물자가 부족해진 일본군은 함경도 백성들을 상대로 양식과 옷을 빼앗고 저항하는 백성들을 죽였다. 일본군에 대한 반발심이 생겼다. 그런데 만호 고경민이 소문을 전했다. ‘명나라 군사가 곧 오게 되는데, 조정에서는 이미 북계(北界)를 역적의 소굴로 판단하고 있으니, 왜적을 평정한 뒤에는 맨 먼저 토벌할 것이다.’
이렇게 되자 백성들이 겁을 먹게 되었다. 함경도의 민심이 돌아섰다.
이 무렵, 함경도 북병사를 맡았던 정문부는 신분을 숨긴 채 숨어 지냈다. 그는 형장(刑杖)을 쓰지 않고 교생(校生)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춘림(春林)과 폐야(蔽野)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그는 경성에서 가장 외진 곳에 있는 교생 지달원의 집에 숨어 지냈다. 그러던 중 지달원이 민심의 변화를 읽고 동지 최배천과 함께 교생들과 식견이 있는 무사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정문부에게 의병장이 되어줄 것을 간청했다. 여러 번 간청하자 마침내 허락하고는 장사들을 불러 모아다. 전 만호 강문우 등 수백 명이 모여들었다.
이후 의병장 정문부는 강문우를 척후장으로 삼고 경성으로 진군했다. 스스로를 예백(禮伯)이라 일컬으며 경성을 다스리던 국세필은 성문을 닫고 항거했으나 대적하지 못할 것을 알고는 성문을 열었다. 그리고 병사의 인(印)을 반납했다.
정문부는 ‘병사와 백성들이 예전에 범한 크고 작은 죄는 문책하지 말라.’라는 명령을 내리고, 국세필에게 경성의 군사를 거느리게 했다. 그리고 각 성문에 이 말을 격문으로 퍼뜨리게 했다.
경성이 의병대에게 공략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일본군이 100명의 병사를 보냈다. 그들이 경성의 서쪽으로 다가왔을 때 강문우가 선봉 기병대를 이끌고 나가 격퇴하였다. 의병들의 사기가 충천하고 백성들도 의병에게 복종했다.
정문부가 펼친 이런 정책 형태를 나는 순리하고 말한다. 순리로 다스리는 그에게 근방의 지방관들이 몰려들었다. 종성의 무사 김사주와 경성 사람 오박 등이 병사를 이끌고 왔으며, 산속에 숨어 있던 종성부사 정현룡과 경원부사 오응태, 경흥부사 나정언, 고령첨사 유경천, 군관 오대남 등도 합세했다.
정문부는 지방관 중에서 자신보다 직위가 높은 정현룡에게 의병 대장을 맡으라고 권했다. 정현룡은 두려워하며 사양했다. 유생들도 ‘평사의 벼슬이 낮다고 해도 많은 사람이 마음속으로 따르고 있으니 의병 대장이 되어 통솔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며 강권했다. 이렇게 하여 정문부는 의병대장이 되었다.
의병대장으로 정문부가 할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일본군을 몰아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국경인이나 국세필과 같은 순왜를 척결하는 일이다. 이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돕는 장군이 있었다. 바로 동장군(冬將軍)이다.
함경도는 위도상으로 한반도의 가장 북쪽에 있다. 남쪽 지방에 비해 겨울이 길고 춥다. 눈도 많이 내린다. 표고 2,000m 이상 되는 높은 산이 수두룩하다.
이런 형편인지라 일본군이 함경도에서 겨울을 나는 일은 어렵다. 의병들이 포위만 하고 있으면 동장군이 알아서 처리한다. 물자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하니 굶어서 죽고, 불을 지피지 못하니 얼어서 죽는다.
“왜적을 토벌하려 하는데 국가에 반역한 적이 아직도 진중(陣中)에 있으니 그들을 먼저 토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장수들이 있었다. 이에 따라 정문부는 국세필 무리를 제거하기로 작심했다. 때마침 북방의 여진족이 침범해왔다. 이들을 막아야 할 임무를 국세필에게 제의했다. 국세필도 허락하고 의병을 종성 성내로 맞아들였다. 이튿날 아침, 정문부는 남쪽 성루에 올라가서 국세필을 유인하여 체포했다.
‘애당초 왜적과 내통해 역모에 앞장선 자는 이들뿐이니 성안 사람들은 안심하라.’는 방을 붙였다. 이렇게 하여 의병의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그리고 의병 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다.
정문부는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기술이 있는 것 같다. 형장(刑杖)을 쓰지 않고 글을 가르칠 때는 교생(校生)들의 마음을 빼앗았고, 경성의 외딴 지역에 숨어지낼 때는 지동원과 몇몇 무사들의 마음을 빼앗았으며, 의병장이 되었을 때는 자신보다 직위가 높은 정현룡을 비롯하여 근동의 지방관들 마음도 빼앗았다. 심지어 의병이 척결해야 할 대상인 국세필의 마음까지도 빼앗아 경성의 성문을 열게 했으며 성안 백성들의 마음도 빼앗았다.
정문부가 사람의 마음을 빼앗은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백성을 순리로 다스린 것이요, 자기 마음을 순리로 다스리는 것이다. 순리(順理)가 곧 천리(天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