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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Jul 12. 2023

이름마저도 하귤


싱그러운 여름햇살 같았던 향기.

그날 이후, 그것으로 나는 그곳을 추억하곤 한다.

눈부신 햇살아래 퍽 어울릴법한 향.  지난 5월. 푸르렀던 제주.  그것을 만났던 건 참으로 우연이었다.

짧기만 했던 열흘간의 제주 여행을 끝으로 아쉬움에 돌아서던 날. 어느 도로에서, 무언가에 이끌린 듯. 달리던 차를 세워 그것에 가까이 다가섰을 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초록의 잎사귀에 만개한 순백의 꽃.


 제주 여행을 하며 가로수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기곤 했다. 소담한 나무에 귤이라기엔  너무 크고,  이리저리 봐도 결코 한라봉이라 할 순 없던.  주황색의 열매를 꽤나 자주 볼 수 있었던 터.

5월에 귤이 주렁주렁 달렸을 리도  만무였다.

게다 제주, 곳곳에 어디선지 모를 향긋하고 기분 좋은 냄새까지  바람결에 은근하게 날리니 그저 감탄하기에 바빴다.


 한편 감귤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 5월 제주여행당연 감귤 따기 체험을 할 수 없었다. 하니 못내 아쉬워하며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데 여행 중 가로수로 봤던 주황의 열매가 탐스럽게 달렸던 그곳을. 집으로 돌아가기 불과 몇 시간 전 정말 우연히. 지나 됐고 달리던 차를 세워 찾아가게 까지 된 건. 어쩔 수 없는 향기에 이끌린 거였을까,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았던 걸까,  가까이 보니 자몽 비슷하기도 했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열매가 달렸던 농장.


 부리나케 농장 입구 계시던 사장님을 찾았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희가  여행 중인데요. 혹시 저기 달린 열매로 아이들이 체험을 해볼 수 있을까요." 나는 제법 간절하게 여쭈었다.

" 음, 아이들이 몇 살이지요? 초등학생이면 각자 3개씩 따는 걸로 합시다."사장님께선 다행히 흔쾌히 승낙을 하셨다.

"그런데 , 사장님 이 열매 이름이 뭐예요? 꽃향기가 너무 좋아요. 한번 가까이 가서 맡아봐도 될까요?"

나는 사장님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  코를 요란스럽게 킁킁거리며 향기를 맡아버리고 말았다.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데도 나는 또다시 그러리라 확신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맡아본 그 어떤 꽃향기 보다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 향은 나로서  흥미롭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달콤한 시트러스향. 여향수에서나 맡아봤향이었다.  한데 세상에, 꽃에서 정말 시트러스 하다는 말 외엔 설명할 수 없는 향이 났다.


 "꽃향기. 정말 좋죠? 나스미깡이라고 해요. 껍질이 두꺼운데 시원하게 해서 까서 먹으면 맛있어요. 집으로 가져가서 드셔보세요."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나스미깡. 나스미깡. 나스미깡. 속으로 되뇌었다. 체험비를 지불하고 , 차에 올라 한참을 달리다 이름을 떠올렸다.

그러다 이내 아차 싶었다. 내 기억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향에 취해 그랬나, 기분 탓이었나,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름을 기억하려 한참 애쓴 뒤에야 아스미.. 까지 간신히 기억났다. 네이버 검색의 도움을 통해 가까스로 나스미깡까지 접근했으며, 결국 하귤이라는 쉬운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까딱하면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조금 우울해질 뻔했으나. 아무렴 ,내게 잊지 못할 이름이 되었으니 그걸로 나는 충분하다.여름 초입에 만난  .


우리 여행의 끝자락에 기분 좋은 설렘을.  따뜻한 햇살을 담은 추억 같은 향을 안겨준 하귤.  시원한 그늘 아래서  산뜻한 시트러스향을 다시 맡아볼 날 그려 본다.

이름마저도 향긋한 하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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