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자서전 대필 작가가 되고 싶은 이유

by 소풍보름

#1. 싸이질

대학생 때 블로그를 운용한 적이 있다. 블로그 제목은 ‘나를 움직인 것들’이었다. 한창 뭔가 열심히 하고 싶던 시절. 나에게 강한 동기와 도전정신을 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이유인지, 한 번은 희한한 꿈을 꾼 적이 있다. 꿈속에서 나는 사형수였고, 사형 집행까지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교도관은 나에게 남은 한 시간을 마음껏 쓰라고 했다. 인생의 마지막 한 시간. 나는 그 소중한 시간을 미친 듯이 ‘싸이질’에 썼다. 싸이월드에 접속해서 내가 아는 사람들의 미니홈피를 파도타기 하며, 그들에게 사과 메시지를 남겼다. 삶의 마지막 순간, 나를 움직인 최후의 ‘동기’는 바로 미안함이라는 감정이었으며 마지막까지 시도했던 도전은 속죄였다. 지금까지도 나에게 인상 깊게 남아 있는 ‘나를 움직인 것들’이다.


#2. 속죄

이언 매큐언의 <속죄>라는 소설이 있다. 소설 <속죄>에는 연인 관계인 세실리아와 로비, 그리고 세실리아의 열세 살 어린 여동생 브리오니가 등장한다. 1935년 여름 어느 날, 연인의 미묘한 관계를 이해할 수 없었던 어린 브리오니는 로비가 세실리아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오해하며, 자신만이 언니를 지켜줄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같은 날 밤, 친척들과 손님이 모인 이 집에서 중요한 범죄가 발생하고, 브리오니는 세실리아의 연인인 로비가 범죄자라며 자신이 목격자라고 위증을 한다. 아무런 확신도 할 수 없었지만, 브리오니는 그것이 언니를 위하고 또한 범죄 피해자를 위한 최선이라 생각한 것이다.

브리오니의 위증으로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로비는 3년이 넘는 복역생활 후 2차 대전 참전을 조건으로 감형을 받는다. 그는 프랑스에서 여러 차례 죽을 위기를 맞이하지만, 세실리아의 “기다리겠다”는 말 한마디를 가슴에 품고 결국 영국으로 살아서 돌아온다. 그리고 브리오니는 이 두 사람을 찾아와 자신이 위증을 했으며, 모든 사실을 법정에서 다시 증언하겠다고 다짐을 한다. 비록 용서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브리오니는 로비와 세실리아의 행복한 새 출발을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낸다.


#3. 숙원

숙원이라는 게 있다. 살면서 이것만은 꼭 이뤄내고 말겠다는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숙원일 것이다. 나에게 숙원은 타인의 자서전을 쓰는 대필 작가가 되는 것이다. 돈 안 되는 일이고 책으로 만들어도 본인 외에는 읽을 것 같지 않은 남의 자서전 대필을 왜 숙원사업으로 여기고 도전을 하는 것일까. 그 이유가, 바로 이 <속죄>라는 소설 속에 있다.


#4. 속죄의 스포일러

속죄의 두 연인 로비와 세실리아는, 사실 1940년 전쟁 중 죽음을 맞이한다. 당연히 브리오니는 이들에게 사과를 하거나 진실을 전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위에 서술한 두 연인의 새 출발은, 훗날 작가가 된 브리오니가 쓴 소설 속의 허구이며, 그녀의 후회와 죄책감이 만들어 낸 절절한 반성문이다. 브리오니는 60여 년 뒤 할머니가 되어 치매진단을 받을 때까지 세실리아와 로비에 대한 소설을 쓴다. 그녀는 자신이 쓴 소설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연인들을 살려두고 마지막에 다시 만나게 한 것은 나약함이나 도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베푼 친절이었고, 망각과 절망에 맞서는 투쟁이었다”라고 말이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녀를 움직인 것이 바로 미안함이라는 감정이었으며, 그녀의 속죄 행위는 글쓰기를 통해 완성된다.


#5. 이제 다시, 내 이야기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고마움과 미안함의 복합적인 감정이라 생각한다. 브리오니가 평생을 글쓰기에 매달렸던 것도, 아마 두 연인을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나의 숙원이자 내 인생의 마지막 도전 과제의 이유가 있다. 나 역시 고마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즉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을 써드리고 싶다. 만약 필요하다면, 브리오니가 했던 것처럼 그들의 실패나 좌절들을 제가 할 수 있는 친절을 베풀어 소설처럼 꾸며드릴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꿈속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싸이질을 했던 나의 속죄 행위를 제대로 완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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