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가장 무거운 날일 때가 있다.
사건이 없어서 평온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통째로 비워버리는 날.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하루가 반쯤 끝나 있는 기분이 든다.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있는데
그 일들이 나를 부르지 않는다.
마치 내가 없어도 충분히 돌아갈 수 있는 세상처럼.
사람들은 그런 날을 “괜찮은 하루”라고 부른다.
큰 문제도 없고, 특별히 아픈 곳도 없고,
누군가와 싸우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이
가끔은 잔인하게 느껴진다.
아무도 나를 밀어내지 않았는데
스스로 뒤로 물러난 것 같은 느낌.
아무도 나를 버리지 않았는데
이미 제외된 사람처럼 서 있는 기분.
나는 종종,
소음이 없는 공간에서 더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
냉장고의 낮은 진동,
형광등이 깜빡이기 직전의 미세한 떨림,
창밖에서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
그 소리들은 나에게
“지금 여기 있다”는 증거처럼 다가온다.
아무 일도 없다는 하루 속에서
나를 붙잡아 주는 것은
그렇게 사소한 감각들뿐이다.
우리는 흔히 의미 있는 하루를 원한다.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
사진으로 남길 만한 순간,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
하지만 대부분의 삶은
설명할 수 없는 날들로 채워져 있다.
왜 우울했는지 말로 옮길 수 없고,
왜 공허했는지 원인을 찾을 수 없는 날들.
나는 그런 날들이
실패하거나 낭비된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저 말이 붙지 않은 하루,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감정일 뿐이라고.
어쩌면 삶은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의미가 없어도 버텨내는 연습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박수 쳐주지 않는 날에도
자기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
오늘도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를 지나왔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조금 지쳤다는 사실을
조용히 인정해 본다.
내일은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오늘의 내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
스스로에게 남겨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