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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르미 Nov 23. 2021

코로나가 아내를 빼앗아갔다 (3)

저희 같은 사람들이 또 생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유난히 추운 저녁, 집에 아이들만 있는 상황이라 한시도 지체할 수 없어서 현장에 도착한 아내는 구급차를 만나 방호복을 착용했습니다. 음성인 보호자가 양성인 아이들과 함께 하루 종일 확진자들을 수송한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도 이해는 안 갔지만, 생활치료센터에 일반 차량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합니다. 어차피 입소하게 되면 아이들과 부딪히지 않을 수 없구요.

<사자굴 속으로 아이들을 구하러 들어가는 캡틴 마블 테레사>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러 들어간 동안 보건소 구급대원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저희 같은 사례가 많이 있나요? 어떻게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 대책이 없죠?"

  "이런 경우 많아요. (이해를 하셨나?) 아니, 나라에서 공짜로 다 치료를 해주고 하면 고맙게 생각을 해야지... 블라블라..."

  "(아니 직장도 관두고 공부도 가정도 팽개치고 남의 애들 살린다고 코로나 소굴에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고요? 선생님들이야 월급이라도 받지만 우리는 휴업 수당이니 일당이니 한푼도 못 받고 나올 때 검사 비용도 내라는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할 수 없다.)"


  그 사이에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두둥하고 아내가 아이들을 구출(?)해서 나옵니다.

<빰빰빰빠바~(BGM) 어벤져스의 한 장면 같습니다>
<그렇게 코로나에게 저는 아내를, 저희 애들은 엄마를 빼앗겼습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저희가 대처하는 것도 응급 상황이기 때문에 많은 고민 끝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입니다. 제 아내의 결정을 존중하고, 칭찬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국가에서는 용감한 시민상을 주기는 커녕 열흘 후에 코로나 검사 비용이나 뜯어 가겠지만요. 저는 추상적인 의미로 '국가'라는 단어를 써서 음모론적인 비판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이런 상황이 너무 속상하기도 하고 시스템 개선을 간절히 바라는 의미에서 비판적인 어조가 글에 좀 담겨 있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심해도 모자를 판에 코로나 확진자 3명과 열흘 동안 갇혀 지낼 아내가 많이 걱정됩니다. 그렇지 않아야겠지만 만약 제 아내가 코로나에 감염되고 위중해져서 나오게 되면, 어차피 세 아이들을 보호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제도적인 헛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아내가 아프게 되면 저는 제 두 아이들을 데리고 그 세 아이들을 돌보러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물론 저희 회사도 망할 것이구요. 무슨 제물 바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저희 가정에까지 더 큰 문제가 생기고(이미 저희 직장이고 가정이고 다 비상 사태이지만), 보건 당국의 일은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이 글은 그래서 쓰는 글입니다. 저희도 저희지만, 제도적인 헛점 때문에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들과 추가적인 어려움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들리지 않는 목소리지겠지만 여기에라도 써 봅니다. 높은 분들은 이런 글 잘 안 보시겠죠? 그래도 펜의 힘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에 희망을 걸어 봅니다.


  (건의 내용)


  1. 영유아가 있는 편부모 가정, 조손 가정 등에 확진자가 발생했을 경우의 대처 매뉴얼 개선. 특별히 보호자 위중증으로 응급 상황 발생하여 영유아 확진자만 가정에 남게 될 경우에 대한 매뉴얼 구비.


  2. 다른 보호자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 입증된 영유아 확진자와 그 보호자에 대해 생활치료센터 내지는 병상에 대한 조기 우선 배정.


  3. 가족 친지 외의 보호자로 영유아 확진자를 어쩔 수 없이 돌보게 된 자원 봉사자에게 의료진에 준하는 보호 체계와 휴업 수당 등 지급. (보호자에 대한 보호 조처는 당연히 미흡하고, 아무런 대가도 없음. 치료 센터에는 음성 보호자용 간이 변기조차 없고 세 명의 확진 아이들과 화장실과 세면대 등을 함께 사용.) 음성 보호자가 코로나 확진되었을 경우 그에 대비한 영유아 보호 체계와 보호자를 우선 치료하는 일에 대한 보장.


  4. 당연히 니가 와서 니 돈 내고 코로나 걸린 남의 새끼 돌보다가 코로나 걸리면 니 책임이라는 저 본데없는 보호자 동의서부터 좀 고치기를. 물론 누군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왜 했냐?'고 혹시 묻는다면 정말 이 나라에 소망이 없다고 봄.


  담당 주무관님이 이번 일로 애써 주신 것을 알고, 형식적이긴 해도 협조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간에 짜증이 나서 언성이 높아졌던 몇 번의 통화에 사과를 드립니다. 모든 행정을 보시는 분들과 의료진들의 모든 수고에 여전히 박수를 보냅니다. 


  무엇보다 글을 봐 주신 브친님들, 제 아내의 안전을 위해 잠시라도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재 전면 등교 상황이라 혹시라도 있을 추가적인 위험이 우려되어 저희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지 못하고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제가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풀지 않기를... 이건 기도가 아니라 그냥 제가 해야겠지요? 저는 엄마 없이 울다가 지쳐 늦게 잠든 아이들이 이제 일어나서 이제 지옥? 천국?으로 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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