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남편 떡 하나 더 주기

미움의 기회비용과 사랑의 투자효율

by 따르미

세상의 모든 결정과 행위에는 "기회비용"이라는 것이 따릅니다. 그 결정을 통해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손해를 아예 보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어떻게든 머리를 굴리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최대한 덜 손해 보는 선택을 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부부의 세계에서는 이 원리가 깨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서로 알면서도 더 손해 보는 선택을 하고, 그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부부들도 제법 많습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누가 모를까요. 미워할수록 손해라는 것은 유치원에서 배웁니다. 그런데 어떤 부부들의 어떤 순간에는 이것이 왜 그렇게 힘들까요.


힘든 세상에서 부부들은 "우리 그냥 사랑만 하게 해 주세요."라고 외치면서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세상이 그 외침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관계 자산'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잘못된 선택의 기회비용을 줄이고 투자 대비 효율은 높이면 됩니다.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미움의 기회비용'입니다. 부부가 서로를 미워하기 시작하면, 수많은 기회비용이 발생합니다. "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은 현실 세계에서는 그리 쉽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떡을 줬을 때, 보통 사람은 다섯 글자로 표현하라면 "감사합니다."라고 하지만, 짱구는 "뭐 이런 걸 다."라고 한다지요.


고마워하기는 커녕, 당연한 줄 압니다. 심지어는 내가 안 먹고 고이 아껴서 준 떡을 갖다 버리기도 합니다. 떡을 못 먹어서 슬픈 것보다,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서러움이 더 힘듭니다. 그렇게 미움의 싹이 트고, 한번 움이 트고 나면 이 나무는 물을 주지 않아도 무럭무럭 잘도 자랍니다.


사람의 마음은 스스로를 잘 속입니다. '저 사람은 날 사랑하지 않아. 그래서 내 호의를 무시하고 내 조언도 듣지 않아.'라는 틀이 생기면, 그다음부터 그 사람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그렇게 보입니다. 내가 그것에 대해 지적하거나 불편해하기라도 하면, 억울해하며 도리어 반격해 옵니다. 의혹은 확신으로 굳어지고, 나는 내 판단을 더욱 굳게 신뢰합니다. 미움의 나무가 잘 자라는 이유입니다.


여러 기회비용이 발생합니다. 우선 하는 일이 잘 안됩니다. '내가 고마워하지도 않는 인간을 위해 왜 이 고생을 해야 하지?'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미움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원래부터 무기력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처음 만날 때부터 그런 사람이었다면 결혼이라는 선택을 했을까요? 갈등은 관계를 깨뜨리고, 관계로부터 좋은 에너지가 생기지 않으면 사람은 무기력해집니다.


미운 놈의 자식(?)도 미워집니다. '어떻게 저렇게 똑같이 생겼지? 어떻게 저렇게 안 좋은 것만 닮지?' 애가 공부를 못하거나 어디가 아프면, 누구를 닮았는지 따지는 것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부부싸움의 클리셰입니다. 보통 좋은 것은 날 닮고, 안 좋은 것은 내 배우자를 닮았습니다. 배우자는 정확히 반대로 느낍니다.


'미운 놈의 자식들'은 일찍 철이 들어갑니다. 힘들어도 참고 괜찮은 척하는 게 그의 라이프 스타일로 굳어집니다. 눈속임을 해서라도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애늙은이. 사랑에는 서툴고, 미움에는 능숙하며, 싸움에는 더 능숙한 부모 사이에서 눈치 보느라 일찍 철이 들어버린 큰 딸은 늘 아픈 손가락입니다.




한번 자라기 시작한 미움의 나무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때로는 가지치기도 해 보고, 도끼로 줄기를 퍽퍽 내리쳐 보기도 하지만, 뿌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미움 나무는 줄기를 잘라도 여전히 미움 나무입니다.


미워해서 그 사람이 바뀌거나 내 마음이 시원해지고, 우리의 관계가 성숙해진다면 좋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제 아무리 잘라내도 건재한 미움 나무의 그루터기 위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 볼 시점입니다.


"왜 밉지?"


미움 나무의 비료는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행동과 말을 통해 수집한 증거'를 솔솔 뿌려주면 재크의 콩나무처럼 폭풍 성장합니다. 그런데 막상 서로의 밑바닥까지 드러나는 싸움을 해보면, 내 생각보다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우리를 제법 잘 속입니다. 불확실한 정보를 믿고, 미움 나무에 올인한 결과는 고통과 무기력, 더 나아가 파국입니다. 그래서 확실한 정보를 신뢰하고, 투자 대상을 바꾸어야 합니다.


여기에 확실한 정보가 있습니다.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올라가 보면, 우리는 결혼식 날에 약속했습니다. 사랑에 관한 이 약속은 계약과는 조금 다릅니다. 만약 이것을 갑과 을의 주고받는 계약으로 여긴다면, 혼인 서약서를 다른 방식으로 좀 더 자세히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 아무개는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간주되는 행동과 말을 할 경우에는 반드시 복수를 해 줄 것이다. 그것이 계속되면 나는 계속해서 미워하고, 이혼도 불사할 것을 맹세한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기대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는 정보보다 비교적 확실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확실한 정보에 근거하여 투자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투자는 언젠가 실패합니다. 목적이 있는 투자여야 욕심 내거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오래갈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사랑의 목적이 분명해지기 시작합니다. 사랑의 목적은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온 가족의 행복입니다.


미울 때는 죽도록 힘들었던 일들이, 사랑을 기준으로 하면 별 일 아닐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남편(아내)이 어디 가서 (내가 보기에) 쓸데없는 것을 비싸게 사 왔을 때, 돈이 기준이라면 그가 미울 것입니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우리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거기서 미워하고 다툴 이유가 없습니다. 이미 손해를 봤는데 그 손해가 누구 책임인지 따지다가 더 큰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내 배우자가 불치병에 걸려서 앓아눕는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집을 팔아서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손해나 단점을 고치려고 일일이 다투고 미워한다면, 모기 잡다가 초가삼간 다 태우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투자 대비 효율이 좋습니다. 최악의 경우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장기 투자 관점에서 보면 어디에서 잭팟이 터질지 모릅니다. 미움의 기회비용이었던 "미운 놈의 자식"들은 전쟁고아처럼 자라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자녀들은 사랑을 배우면서 자랍니다. 그들은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는지' 언제나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합니다.


돈이나 자존심, 손해나 이익을 기준을 삼고 살아가며 그 사람을 교정하려 하면, 교정 효과는 미미하고 갈등과 고통이라는 무지막지한 기회비용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기준이 되면 확실히 덜 힘듭니다. 그리고 사랑을 하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은 변합니다. 그래서 서로를 덜 힘들게 합니다.




결혼 10년 만에 "우리 사랑하면서 살아요."라는 말을 이렇게 길게 쓸 수 있게 되다니. 감격스럽네요. 공대 나온 남자는 "A+B=C"가 편했습니다. 감정을 표현할 줄도 잘 몰랐고, 살짝 갈등이라도 생기면 동굴에 들어가 입 꾹 다물고 한 달을 버티기 일쑤였습니다.


이제 공대 나온 남자는 전보다 '관계'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는 그 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그 관계에서 힘을 얻습니다. 이제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에서 자기의 존재 의의와 정체성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관계'는 '보이지 않는 자산'과 같습니다. 오늘도 이 자산을 늘리기 위해 이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깨우고, 밥을 먹여서 학교와 유치원을 보내려고 합니다. 제가 서윗한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고, 오늘도 미움 나무에게 속지 않고 나와 우리를 지키려고요. 퇴근길에는 떡을 사 와서 애들은 한 개씩 주고 아내에게는 두 개를 줄 것입니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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