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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르미 Jul 29. 2021

딸을 위해 다시 쓰는 엄지공주 #5.

들쥐 할망구 컴퍼니 퇴사 기념

  사람마다 달리는 속도가 다르다. 


  제비도 마찬가지다. 제비는 겨울이 오기 전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일찍 찾아온 추위 때문에 날지 못하고 땅에 떨어져 죽은 듯 잠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녀의 따뜻한 친절 덕분에 이제 다시 깨어났다.     


  “고마워. 사랑스러운 소녀야. 정말 따뜻해졌어. 이제 금방 다시 날 수 있게 될 거야.”     


  제비는 소녀의 돌봄을 받고 날로 건강해져 갔다. 두더지와 들쥐는 새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못마땅해했다. 그렇지만 날카로운 부리를 가진 제비를 전처럼 걷어 차지는 못했다.      


  “결혼식을 서둘러야겠어요.”     


  꾀가 많은 들쥐 노파는 소녀가 제비와 함께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두더지는 이미 소녀에게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노파의 말이 반가웠다.     


  두더지는 소녀에게 자기 집에 있는 가장 큰 방을 주었다. 먹을 것이 잔뜩 쌓인 창고도 함께 주었다. 그렇지만, 이제 다시는 햇빛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어느새 밖으로 나가는 구멍은 전부 막혀 있었다. 들쥐 노파의 꾀였다.     


  들쥐 노파의 명령을 따라 거미줄로 비단을 지어 혼숫감을 준비하며 소녀는 생각했다.     


  ‘들쥐 할머니의 말대로 그냥 여기서 두더지와 결혼해서 살아야 할까? 겨울은 너무 무서워.’     


  소녀는 추운 겨울이 싫었다. 여행은 즐거웠지만, 겨울은 무서웠다. 춥고 배고픈 것만큼 무서운 건 없다고 생각했다. 봄, 여름, 가을에는 몰랐던 세상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다.     


  들쥐 노파와 두더지는 늘 먹을 것 이야기뿐이었다. 마치 돈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그래서 두더지가 선물한 큰 방과 먹을 것이 소녀의 눈에 들어왔다.      

 

  함께 살면 닮아간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소녀가 머무는 방은 두더지의 집에서 가장 컸지만, 소녀의 마음은 어느새 콩알만큼 작아져 있었다. 소녀의 여행을 불꽃에 비유한다면 바람에 꺼져가는 촛불이었다.


  어느 날 밤, 소녀는 제비에게 물을 가져다주러 갔다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푹 쉬었다. 제비가 물었다.  

   

  “왜 예쁜 소녀야. 무슨 걱정이라도 있니?”

  “응.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난 겨울이 너무 무서워. 작으니 적게 먹어도 되지만,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잖아. 들쥐 할머니네 집에 오기 전까지 정말 힘들었거든.”

  “그래서 두더지랑 결혼하려고?”

  “모르겠어... 머리와 마음과 몸이 다 따로 노는 것 같아. 답답해.”     


  제비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럴 때는 일단 밖으로 나가 보는 거야. 같이 나가보자.”   

   

  소녀는 겨울이 아직도 무서웠지만, 너무 답답했기 때문에 제비의 말을 따라 구멍 밖으로 나갔다. 제비는 두더지가 천정에 팠다가 다시 막아둔 구멍을 부리로 파낼 수 있을 만큼 회복되어 있었다.      


  소녀는 깜짝 놀랐다. 어느새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 있었다. 다시 새들이 울고, 겨울을 견디고 싹을 틔운 무성한 보리밭 주변에는 들꽃들이 피어 있었다.      


  “같은 곳에서 아무리 고민해도 좋은 생각이 나지 않으면 일단 그 자리를 떠나 봐. 그러면 안 보이던 것도 보이기 시작하고, 모르던 것도 알게 되거든.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해.”     


  소녀는 겨울이 너무 두려웠기에, 겨울이 언제까지고 계속될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천지 만물의 이치를 따라 겨울은 반드시 지나가고 봄이 온다는 사실을 배웠다. 지혜로운 제비 덕분이었다.     


  “고마워. 너를 따라 나오지 않았다면 봄이 온 줄 몰랐을 거야.”     


  구멍 속에서는 소녀가 바깥으로 나간 것을 알아차린 들쥐 노파와 두더지가 난리법석을 떠는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 기생충 같은 계집애.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작고 예쁜 소녀야. 다시 돌아오너라. 더 큰 방과 더 큰 창고를 주마!!”     


  소녀는 잠시 고민했다. 자기를 마음대로 두더지와 결혼시키려고 했지만, 들쥐 노파가 아니었다면 소녀는 겨울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다시 제비가 물었다.     


  “네가 여행을 시작했던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난 이름을 찾고 싶었어. ‘작아서 엄지, 예뻐서 공주.’ 그런 이름 말고, 진짜 내 이름. 그래서 여행을 떠났었지.”

  “그래? 그러면 그 이름은 찾았어?”

  “아니, 아직.”     

  

  “그렇다면 뭘 고민해? 떠날 때가 된 거야.”     


  때마침 두더지와 노파가 다투는 소리가 소녀의 귓전에 들렸다.     


  “들쥐 할머니! 얘기가 다르잖소! 저 아이가 내게 시집오지 않으면 집 앞의 통로와 창고는 절대 줄 수 없소.”

  “아이고 두더지 양반, 조금만 기다려 보십시오. 얘, 얼른 들어오너라! 네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신부값을 못 받는단 말이다!! 어서 들어오지 못해!!”     

  "이 제비 녀석!!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내 신부를 내놓아라 어서!!"


  제비는 등을 내밀며 말했다.     


  “더 이상 고민할 것 없네. 들쥐 할머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소녀는 마음 한 자락에 있었던 구김살을 훌훌 털고 제비의 등에 올랐다. 봄이 오면 죽은 것 같았던 여행도 소생한다. 흔해 빠진 말이지만, 진실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P.S. (딸은 재밌다고 계속 쓰라는데 나는 너무 덥고 지루해서 쓰는 사족)


  날아가며 소녀는 들쥐와 두더지에게 외쳤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본래 퇴사는 안 하면 모를까, 결심했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해야 하는 것이다. 암.


                              <아마도 이런 느낌으로다가>

                            <두더지와 들쥐 할머니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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