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에 점점 익숙해지다
고야산에서의 겨울은 혹한 그 자체였다. 해발 고도가 높은 고야산은 습기까지 더해져 더욱 추웠다. 겨울이 되면 눈이 자주 내렸고, 눈길을 걸어야 하는 날도 많았다. 보통 사람들은 장화를 신고 다녔는데, 나는 그 장화가 너무 예뻐 보여 호기심을 갖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한국의 온돌방과 사뭇 달랐다. 한국의 온돌방에서 유난히 추위를 타던 나는 온돌바닥과 껌딱지가 되어 나의 일상이었다. 그러던 나는 일본의 겨울이 무척 추웠다. 내가 머물던 다디미 방에는 온돌 대신 고타츠라는 난방 기구를 사용했다. 고타츠는 테이블 형태였다. 아래에 붉은 열선 전구가 달려있었고, 고다츠 위로 두꺼운 담요를 덮어 따뜻함을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아마 일본 고유의 온열 기구인 듯 하였다. 고야산은 전통을 자랑하는 좌식이 많았으며 고다츠를 중심으로 앉아서 식사와 차를 마시는 형태였다. 특히 나는 책상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고다츠를 떠나서 생활할 수는 없었다.
너무 추운 날, 방안에 훈기가 전혀 없었다. 뭔가 기계가 돌아가길래 그것이 난방기구인 줄 알고 세게 틀었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제습기였다. 78년도 그 시절에 제습기를 처음 접하였다. 물론 그안에 물이 고이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였다. 너무 추워서 나는 고다츠안으로 몸을 깊이 넣고 잠이 들었다가 가벼운 화상을 입은 적도 있었다.
저녁에는 목욕이 필수였다. “하루의 피로는 뜨거운 물로 풀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때로는 피곤해서 일찍 쉬고 싶어도, “게으르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긴장해야 했다. 목욕도 순번이 있었고, 목욕탕 문에는 문고리가 없어서 익숙해지기까지 불편함을 느꼈다.
일본에서는 아르바이트가 흔했다. 지금도 느끼지만 적당한 일을 즐기는 문화였다. 그 시절엔 사장님은 회전 위자에 앉아서 폼을 잡았다면 일본 남성들은 앞치마를 보통으로 두르고 일하는 모습은 열정적으로 다가왔다.. 나도 수업이 끝나고 숙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교를 가거나 외출할 때는 이름을 적어 놓은 나무 명패가 벽에 붙여 있었다. '외출'할 때는 명패를 붉은색으로 돌려놓고, '잇떼 기마스~" 하고 나온다.
귀가 후에는 "돌아옴" 명패로 바꿔 놓으면 나의 이름이 검정색으로 돌려놓으며 '다다이마'라고 인사를 해야 했다. 이런 일본식 인사말이 헷갈리기도 했다. 식사 전에는 “잘 먹겠습니다”, 식사 후에는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가 필수였다. 심지어 남의 앞을 지나갈 때도 “실례합니다”라며 미안한 마음을 전하곤 했다. 이처럼 상대를 배려하는 일본 특유의 상냥한 인사말은 지금도 배울 만하다고 느낀다. 심지어 누군가 실수를 해도 상대방이 먼저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일본인의 속마음을 이해하기 힘들어
하면서 속내를 전혀 나타내지 않는 문화에 이중성을 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