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뒤집기
일본의 날씨는 마치 손바닥을 뒤집듯, 순식간에 변한다. 손바닥의 부드러운 안쪽은 따뜻한 햇살 아래 고요한 정원을 연상시키고, 그 너머로는 푸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안정적이다. 공기는 따스하고 바람은 살짝 불어오며, 결코 변하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손바닥이 휙 돌아가면, 거칠고 냉랭한 바닥이 모습을 드러낸다. 잔잔했던 하늘은 어느새 구름으로 뒤덮이고,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세상을 씻어낸다. 일본에서 살아가며 날씨의 변덕을 자주 체험한 나는, 그 날씨의 빠른 변화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고야산에서의 날씨는 특히 변화가 많았다. 고요한 산속의 아침 햇살은 신비로웠지만, 겨울에는 눈이 너무 내려 학교까지의 약 20분 거리가 마치 몇 시간처럼 느껴지곤 했다. 자가용으로 등교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나는 늘 도보로 학교에 가야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눈 덮인 길을 걸어가며, 가끔씩 길가에 세워진 나무 팻말을 읽곤 했다. 그중 하나는 “세계의 평화는 인류에게 있다”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 단순한 문장이 이상하게도 마음속에 깊이 박혔다. 고요한 겨울 산을 배경으로, 그 말은 마치 나에게 사명감을 주는 것 같았다.
고야산의 통학길을 걷다 보면, 지인들과 마주치는 일도 자주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일본의 정중한 인사법을 잊지 않고 실천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상대가 다시 고개를 숙이면 나도 다시 고개를 숙이고. 그 반복되는 예절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들의 깊은 배려였다. 그러나 이런 인사법은 자칫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어,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면 간혹 지각을 하곤 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지 의문이었지만, 일본 사람들의 정중한 예절을 배워가며 그것이 그들의 문화이자 생활임을 알게 되었다.
특히 일본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나에게 "훌륭하다"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처음에는 그들이 말하는 '훌륭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상대방에게서 어떤 작고 사소한 점도 귀하게 여기고 칭찬하는 습관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작은 일에서 훌륭함을 발견하고, 그것을 진심으로 찬양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고야산에서 유일한 유학생으로 생활하다 보니, 나 자신도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다. 소문은 빨리 퍼졌고, 한국인 유학생이라는 이유로 더욱 주목받기 쉬웠다. 그러다 보니 행동 하나하나에 더 신경 쓰게 되었고, 학교에서도 더 성실히 출석하려 애썼다. 하지만 가끔씩 지각을 하다 보면, 교수님은 출석을 부를 때 내 이름을 한 번만 부르는 대신, 두 번 혹은 세 번 불러주며 주위를 둘러보며 기다려 주셨다. 그 배려심 깊은 모습에 가끔은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죄송스러웠다. 특히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으셨던 한 교수님은 한국의 추사체를 좋아하셨는데, 훗날 한국에 오셔서 직접 대학 도서관에서 추사체를 보며 감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그러나 날씨는 오후가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어느새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찬바람이 불어오며 흐리거나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일본에서는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필수였다. 그 당시 나는 영국에서만 우산이 필요할 줄 알았지만, 일본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우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었다. 손바닥이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것처럼, 일본의 하늘도 언제든 흐리고 비나 눈이 내릴 수 있었다.
그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도 일본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고 일상을 이어갔다. 그들은 날씨의 변화에 순응하며,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법을 터득한 것처럼 보였다. 손바닥의 부드러운 면과 거친 면처럼, 일본의 날씨도 그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부드럽고 고요한 순간이 있는가 하면, 거칠고 변화무쌍한 시간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일본의 사계절을 완성하는 것이리라. 일본의 날씨가 주는 이 변덕스러움,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기쁨들이야말로 이곳에서의 삶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임을 깨달았다.
변화는 때로 힘들기도 하지만, 인간의 양면성을 이해하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