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을 참는 아이

by YJ

나는 언제부터 울지 않게 됐을까.


넘어졌는데 울지 않는 아이를 처음 봤다.



나른한 오후, 아파트 문들이 하나둘 열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끄럼틀 주위를 뱅뱅 돌며 뭐라 뭐라 떠드는데 무슨 말인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가끔 까르르 웃음이 터질 때마다 아래에서 살짝 떨리는 느낌만 올라왔다.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였다.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내가 앉아 있는 벤치를 스치듯 뛰어가며 소리쳤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안녕.”

아이가 인사할 때, 가장 늦게 뛰어오던 아이 하나가 내 앞에서 철퍼덕 넘어졌다.

아이들은 잠깐 멈췄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뛰어갔다.

넘어진 아이만 그대로 남았다.

아이는 울음을 꾹 참고 있었다. 입술을 깨물고 눈만 몇 번 깜빡였다.


나는 꼬마에게 가까이 가서 쪼그려 앉아 말을 걸었다.

“아이고, 꼬마 선생님. 안 아팠어? 의젓하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엄마가요… 형아가 되려면 아파도 참아야 한대요.”

그 말이, 너무 일찍 자란 목소리 같았다.

말끝이 흔들렸다.

나는 뭐라고 맞장구를 쳐야 할지 잠깐 멈췄다.

“우리 친구는 똑똑한 엄마가 있네. 맞아 맞아, 너무 잘하고 있어.”

아이 얼굴이 조금 풀렸다.

“근데 말이야, 여긴 엄마가 없잖아.”

아이는 나를 올려다봤다.

“너무 아프면 조금만 울어도 돼.”

나는 손바닥으로 아이 무릎 옆을 가리켰다.

“아저씨가 엄마한테는 비밀로 할게.”

아이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래도 아이는 나오는 울음을 꾹꾹 참았다.

조금씩은 새어 나왔지만, 아이와 약속했듯

나는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이었다.


나는 다시 벤치에 앉았다.

조금 전까지 아이가 서 있던 자리가 아직 따뜻한 것 같았다.

그런 건 늘 착각인데도 괜히 손이 먼저 갔다.

무릎을 한 번 쓸어보고, 손바닥을 접었다 폈다.

아까 아이가 넘어졌던 자리에는 아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이들 목소리는 이미 놀이터 반대편으로 멀어져 있었다.

가끔 까르르 웃음만 바람에 섞여 넘어왔다.

나는 등을 벤치에 기대고 잠깐 눈을 감았다.

오늘 같은 오후는

가끔 생각날 때마다 괜히 미소가 지어질 것 같다.




다음 날 저녁 같은 벤치.


나는 어제 앉았던 자리에 다시 앉아 있었다.

해는 조금 기울어 있었고, 놀이터에는 아이가 몇 명밖에 없었다.


저쪽에서 아이 하나와 어른 하나가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걸음을 멈췄다.

어제 그 의젓한 아이.

잠깐 눈을 크게 뜨더니, 아무 말 없이 뛰어왔다.

“안녕하세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

그제야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한아.”

아이의 이름이었다.

여자가 조금 늦게 다가왔다.

아이 옆에 서서 나를 한 번 바라봤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여자는 잠깐 멈칫하더니 씁쓸한 듯 미소를 지었다.

“서한아. 얼른 가자. 엄마랑 마트 가야지.”

아이는 나를 한 번 올려다봤다.

“안녕히 계세요.”

“그래, 안녕.”


아이는 다시 여자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조금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서한아, 얼른 가자.”

두 사람은 그대로 멀어졌다.

나는 그 뒷모습을 끝까지 보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가 우는 걸 다시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