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이는 그날도 먼저 와 있었다.
아이들이 오기 전부터, 늘 그 자리에.
놀이터 가장자리에 서서 아이들이 모이는 걸 조용히 보고 있었다.
진국이가 앞에 섰다.
아이들 중에서 제일 먼저 움직이는 아이였다.
“야, 건너자.”
진국이가 말하자 아이들이 우르르 모였다.
서한이는 아이들 뒤에 섰다.
한 발쯤 떨어진 자리였다.
서한이는 고개를 돌렸다.
오른쪽, 왼쪽, 다시 오른쪽.
그대로 한 발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야.”
진국이가 서한이 앞에 섰다.
“빨간불이야. 지금 건너면 안 돼.”
서한이는 진국이를 올려다봤다.
눈을 몇 번 깜박였다.
아이들은 서한이가 아니라 신호등을 보고 있었다.
파란불이 켜졌다.
“가자!”
아이들이 먼저 뛰었다.
진국이도 같이 건넜다.
반대편에서 아이들이 멈춰 섰다.
아이들이 건넌 뒤, 신호등은 빨갛게 멈췄다.
“서한아.”
서한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용기를 내 발끝을 조금 움직이자, 경적음과 함께 차가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때 벤치에서 일어났다.
아이들 쪽으로 가지 않고 서한이 옆으로 다가갔다.
서한이는 나를 보지 않고 신호등만 보고 있었다.
“약속 하나 할까?”
나는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한이가 고개를 들었다.
“빨간불이면?”
나는 손바닥을 쫙 펴서 앞에 세웠다.
“멈춰.”
서한이는 그대로 따라 했다.
손을 들고 멈췄다.
“초록불이면?”
나는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오른쪽.”
“왼쪽.”
“다시 오른쪽.”
그리고 손을 번쩍 들었다.
“손 들고, 천천히.”
서한이는 같은 속도로 내 흉내를 냈다.
나는 웃으며 한 번 더 말했다.
“그리고 하나 더.”
나는 조금 더 크게 말했다.
“삼촌이 ‘빨간불!’ 하면 그때도 멈추기.”
서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등이 바뀌었다.
초록불이었다.
“가볼까?”
나는 한 발 물러섰다.
서한이는 다시 오른쪽, 왼쪽, 오른쪽을 봤다.
손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걸었다.
아이들 쪽으로.
반대편에서 아이들이 서한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왔네!”
진국이가 웃었다.
서한이는 아이들 앞에 서서 잠깐 숨을 골랐다.
그리고 이쪽을 한 번 봤다.
서한이는 그제야 웃었다.
조금 늦게, 그래도 분명하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