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한 번 더 바뀌었다.
놀이터 나무 그늘이 조금 다른 쪽으로 길어졌다.
서한이는 뛰다 멈추는 아이가 됐다.
미끄럼틀을 내려와도 바로 달리지 않았다.
주변을 한 번 봤다.
그날도 서한이는 미끄럼틀 아래에 서 있었다.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놀이터 바깥에서 어른 하나가 들어왔다.
서두르지 않는 걸음.
둘러보는 눈.
아이들만 보지 않았다.
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 하나가 서한이 앞에 멈췄다.
“안녕.”
서한이는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그 사내가 웃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이 근처에 풀잎 유치원 있지?”
서한이 눈이 잠깐 흔들렸다.
자기가 다니는 곳이었다.
사내는 기다렸다.
재촉하지 않았다.
“길을 잘 몰라서 그래.”
서한이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때 그 사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거 좋아해?”
초콜릿이 나왔다.
서한이는 손을 내밀었다.
천천히.
받기 직전,
손이 멈췄다.
나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일어나지 않았다.
다가가지도 않았다.
목소리만 냈다.
“빨간불.”
놀이터 소음 사이로
그 말이 스쳤다.
서한이는 아주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고개가 내 쪽으로 돌아왔다.
나는 같은 자리에서 말했다.
“기린.”
서한이는 묻지 않았다.
초콜릿에서 손을 뗐다.
“아니요.”
그리고 그 사내를 지나 아이들 쪽으로 달려갔다.
그 사내는 잠깐 서 있었다.
서한이가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는 걸 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말없이 놀이터를 나갔다.
나는 그제야 숨을 조금 내쉬었다.
서한이는 미끄럼틀 위에서 나를 한 번 봤다.
확인하듯.
나는 엄지를 들어 보였다.
서한이는 다시 손잡이를 잡았다.
그날 이후 낯선 어른이 말을 걸면 먼저 대답하지 않았다.
인사는 했지만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벤치에 앉아 그걸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