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아래에서

by YJ

사범님 목소리가 체육관 천장에 부딪혀 천천히 내려왔다.


“서한아.”


서한이는 한동안 매트만 보고 있다가, 늦게 고개를 들었다.
사범님이 손으로 옆을 가리켰다.


“자, 옆차기. 친구들이랑 같이 해야지.”


앞줄 아이들은 이미 발을 올리고 있었다.
휙, 휙. 도복 바지가 공기를 가르며 지나갔다.


서한이는 한 박자 늦었다.
발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잠깐 헷갈렸다.


“서한아, 같이.”


다시 부르는 소리.


서한이는 급하게 따라 했다.
옆에 있던 우진이가 힐끗 보고 웃었다.
잘했다는 건지, 그냥 웃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공기가 차가웠다.
태권도 차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계단 앞에 모여 있었다.


우진이가 먼저 뛰었다.
계단을 밟지 않고 바닥으로 착, 내려왔다.


“오오!”


아이들이 소리쳤다.


누군가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우진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몇 걸음 걸었다.


서한이는 그 무리에 섞이지 못했다.
그냥 서 있었다.


어제 들었던 병현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조금 위험해도, 친구들끼리는 괜찮아.’


우진이가 다시 뒤를 돌아보는 순간,
서한이가 발을 내디뎠다.


착.


발바닥이 바닥에 닿았다.


아이들이 멈췄다.


“야, 서한이도 뛰었어!”


우진이가 잠깐 놀란 얼굴로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되네.”


그 말이 크게 들렸다.


서한이의 가슴이 조금 뜨거워졌다.


차 안에서는 아이들이 계속 떠들었다.
방금 일을 몇 번이나 다시 말했다.
서한이도 같이 웃었다.


단지 앞에서 내릴 때까지,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집 쪽으로 걷다가 발목이 조금 뻐근했다.
서한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벤치 쪽에서 병현이 앉아 있었다.


병현이 과하게 놀란 얼굴을 했다.


“야… 서한이 왔네? 여기 와 봐, 여기.”


손으로 옆자리를 툭툭 쳤다.


서한이는 옆에 앉았다.


삼촌이 몸을 숙여 발목을 봤다.
눈이 괜히 더 커졌다.


“아이고… 아팠겠다. 많이 아팠지? 진짜 아팠지?”


서한이는 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웃음이 먼저 나왔다.


“나… 우진이만큼 뛰었어.”


병현이 바로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었다.


“삼촌은 서한이가 할 수 있는 거 알고 있었지.”


괜히 더 크게 말했다.


서한이가 웃었다.


잠깐 뒤, 병현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조금 있으면 엄마 온다.”


서한이가 고개를 들었다.


“발목 보면… 엄마가 화낼 수도 있어.”


병현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진지했다.


“그래도 서한이는 이해해 줄 수 있지? 엄마가 화내도, 서한이는 알고 있지?”


서한이는 힘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멀리서 엄마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서한이가 벌떡 일어났다.


“엄마다.”


병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크게 흔들었다.


“자, 이제 서한이가 잘해야 돼. 삼촌 먼저 간다.”


뒤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리고 벤치는 비어 있었다.


서한이는 손을 흔들었다.


“바이바이…”


엄마가 다가오다 잠깐 멈췄다.
서한이가 바라보던 방향을 한 번 보고, 다시 서한이를 봤다.


“서한아, 왜 여기 있어?”


엄마 시선이 발목으로 내려갔다.


“어머… 이거 뭐야.”


표정이 굳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어?”


서한이는 입술만 움직였다.


엄마는 한숨을 쉬고 서한이를 업었다.


서한이 얼굴이 엄마 어깨에 묻혔다.
단지 불빛이 가까워졌다.


서한이는 엄마 등에 업힌 채, 다리를 조용히 접었다.





다음 날 놀이터 앞 단지 입구에서 태권도 차 문이 열렸다.


“야, 내일 로블록스 할래?”


우진이가 물었다.


서한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근데 너 맨날 지잖아.”


아이들이 웃으며 단지 안으로 걸어갔다.


가방은 무겁지 않았다.
발목도 멀쩡했다.


아파트 입구를 지날 때, 벤치가 보였다.


병현이 앉아 있었다.


전처럼 크게 부르지 않았다.


서한이는 잠깐 멈췄다가, 손만 들었다.
병현도 손을 들었다.


그게 전부였다.


서한이는 다시 친구들 쪽으로 걸어갔다.


뒤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깐 뒤, 서한이는 웃음 속에 섞였다.


벤치에 남은 병현은,
아주 조금 늦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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