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위해 걷는 것

나이가 들면서 좋아지는 것들

by 이제은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걷는 게 좋아졌다

삶이 바쁘게 흘러갈수록

그저 여유롭게 걷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새삼 깨닫고 있다.


목적지를 향해 걷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그저 걷기 위해 걷는 것의

즐거움과 기쁨을 잠시 느껴 봄이,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두발에 힘을 싣고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을

잠시 느껴 봄이 어떨까


문득 아빠의 손에 이끌려

오르던 산길의 거친 흙바닥과

기린처럼 키가 큰 나무들의

짙푸른 잎들이 선사해주던

뜨거운 햇빛 속의 청량한 그늘이

그리워졌다.


그리움을 달래고자

모자를 눌러쓰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뜨겁게 내리쬐는 여름 햇빛 속을 걷고

또 걷었다

송골송골

어느새 목덜미와 등 뒤로

굵은 땀방울들이 한가득 맺혔다

저 멀리 거대한 나무 한그루가

나에게 손짓했다

나는 이끌리듯 걸어가며

가까이 다가설수록

더 거대해지는 나무의 웅대함에

한동안 경이로움에 휩싸였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비와 바람을,

눈과 추위를

겪어내었을까 생각하며

나무의 거친 표면을 쓰다듬어보았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거칠음은

분명 나무의 표면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겪어온

비와 바람, 눈과 추위로 인해

내 마음의 표면도

분명 이렇게 거칠어져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무를 올려다보는 순간

눈부신 햇빛이 잎사귀들 사이로 반짝였고

거대한 나무 주위를

힘차게 나는 작은 참새들과

그 아래에서

재빠르게 움직이는 회색 다람쥐들.


그들 사이에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이 세상 속에

거친 표면을 가진 거대한 나무와

힘차게 나는 작은 참새들과

재빠르게 움직이는 회색 다람쥐들과

함께 더불어 존재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좋아지는 것들이 참 많다.

앎에서 오는 즐거움과

배움에서 오는 기쁨.

걷기란 모든 앎의 시작이요

순수한 배움의 과정임을.


걷고 또 걸으며 스스로에게 알려주어야지.

거칠어진 마음은 부드럽게

가리어진 시야는 넓고 크게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내 안의 거대한 나무 한그루

내게 밝게 손짓할 것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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