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들은 감각을 마음으로 가는 통로라고 생각한다. 삶은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고, 맛보는 것에 의해 지배된다.
우리의 목표는 마음을 침묵시키는 것도, 심지어 잠잠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생각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그래야 놓아줄 수 있다. 내 마음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동안에는 보고, 듣고, 읽고, 흡수하는 것을 조정함으로써 자극적인 장소나 사람을 피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명상은 감각에 입력되는 것들을 통제하게 해주는 중요한 도구다."
그동안 나는 감각에 입력되는 것들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많은 날들 나 스스로를 감각에 지배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는가?
그동안 나는 내 마음을 침묵시키고 잠잠하게 만드려고 명상을 하지는 않았는가?
마음 깊숙이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것은 부끄러움 혹은 깊은 반성이었다. 나는 지금껏 내 몸의 연약함을 핑계 삼아 감각에 쉽게 마음이 지배당하도록 내버려 두었었다. 지치고 피곤한 몸과 마음을 달래준다는 핑계로, 보상해준다는 핑계로 내게 이롭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렇게 감각의 쓰나미로 마음을 침묵시키고 잠잠하게 만든 뒤 그것이 마치 명상의 효과라고 믿었었다.
나는 지금껏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명상을 해왔음을 깨달았다. 그저 마음을 침묵시키고 잠잠하게 만드는 것이 명상의 목표이자 결과라고 생각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에 입력되는 것들에 의존해서라도 그 목표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 감각들이 좋아하는 맛있는 디저트 먹기, 꿀맛 같은 늦잠자기, 재미있는 티브이 보기 등을 지나치게 하곤 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동안 나는 내 생각의 의미를 파악하며 행동했었는가? 그렇지 않았다면 그저 감각에 이끌리고, 취하며, 때론 휘둘리지는 않았었는가? 나는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할 때 그 행동으로 얻어지는 감각의 자극을 통해 내 생각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깊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일시적인 감각의 자극이 아님을 깨달았다. 내가 반복되는 일상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이겨내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놓아줌. 내 마음 안에 쌓인 모든 것들을 놓아주는 것. 그것들에게서 자유가 되는 것. 해방이 되는 것. 그것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었다. 모든 감각과 연결된 행동들을 추구하는 진짜 이유는 사실 이 놓아줌에서 오는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이번 주말에는 제대로 된 목표를 가지고 명상에 임해야겠다. 감각이 마음으로 가는 통로라면 감각을 잘 다스려서 내 마음으로 차분히 걸어 들어가고 싶다. 그 통로를 가지런하고 깨끗하게 정리해서 다음번에도 쉽게 들어나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놓아줌은 훨씬 더 즐겁고 편안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