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하루 동안의 긴장이 풀리며 그날 있었던 일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무방비상태의 내 마음을 덮치곤 했다. 허기진 배는 이성을 마비시켰다. 나는 그 어떠한 방어태세도 갖추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렸다. 그렇게 잠드는 순간까지도 파도는 이어졌다. 철썩철썩. 한참을 몰아치는 파도에 휩쓸린 뒤 지칠 때로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침대에 눕혀 휴식을 청해보았다. 야속하게도 침대에 누워 두 눈을 감아도 파도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채 커튼 틈으로 새어 들어온 달빛이 걸터앉은 천장을 가만히 응시했다. 고요한 밤이었다. 외로운 바람소리만이 멀리서 들려왔다.
나는 내게 물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내 마음속에 이리도 멈추지 않고 파도가 몰아치는 것인가? 그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내 마음은 쉼 없이 가동되는 머릿속 생각들을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지나간 일들이 떠오르면 나는 어느새 어둔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동굴 속 어둠이 짙어질수록 근심과 불안은 더 커졌다. 내 호흡은 얕고 빨라졌다. 침대에 누워있어도 내 몸과 마음은 계속해서 긴장하고 있었다.
이상했다. 나는 분명 하루 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매일 스스로에게 여러 가지 보상을 해주었다.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재미있는 티비 프로그램을 보고, SNS와 온라인 쇼핑을 했다. 모두 내가 오늘 나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들이었다. 분명 그 선물들을 받을 때에는 즐겁고 기분이 좋았다. 하루 동안 받은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모든 선물들을 실컷 즐기고 난 다음에도 내 마음은 여전히 허전했고 어김없이 파도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왜 내 마음은 전보다 더 나아지지 않았는가? 혹시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스스로에게 보상 혹 선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은 모두 일시적인 것들이었다. 그 순간들이 지나고 나면 내 마음은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나는 생각했다. 과연 내 마음의 제자리는 어디일까? 내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 내 마음은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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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따라 제각기 다른 곳에 다른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을 마음. 내 마음은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들 사이에 홀로 놓여있는 바위와 같았다. 그리고 파도들은 내 삶 속의 여러 가지 스트레스들이 형상화된 것이었다. 어릴 적 바다에 놀러 갔었을 때 일이었다. 언니와 동생과 물속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공이 저 멀리 날아갔다. 나는 공이 파도에 떠내려가기 전에 그것을 되찾기 위해 서둘러 헤엄쳐갔다. 그리고 다행히 공이 떠내려가기 전에 양팔로 공을 힘껏 껴안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언니와 동생이 기다리는 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거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떠올리면 지금도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나며 정신이 아찔했다. 내 주변을 감싼 파도들. 아마도 그 기억 때문에 내게 파도는 두려움과 불안, 즉 스트레스의 모습이 된 듯했다.
멀리서 바라보는 파도는 시원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안에 휩쓸릴 때에는 두려운 대상이 된다. 내가 모르는 낯선 곳으로 나를 데려가버릴 수도 있고 어쩌면 바다 깊숙이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것이 바로 내 마음이 제자리일 때 내가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의 정체인 것인가? 내 삶이 내가 통제할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라는 근심과 걱정.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나친 의지와 그로 인해 늘어나는 스트레스의 파도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파도에 맞서 싸우며 그 파도들을 부수는 것이 과연 내 목적인가? 아니었다. 파도들은 내가 통제해야 하는 또 맞서 싸워야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파도들이 밀려올 때는 지금 내 마음이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신호였다. 내 마음이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신호였다. 그동안 나는 파도의 존재를 그저 또 다른 스트레스라고만 생각해왔다. 나를 괴롭히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오늘 명상을 통해 파도의 존재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자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다. 이제는 파도가 몰아치면 '오늘은 파도가 몰아치는구나. 내 마음에 따뜻한 보살핌이 더 필요하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렇게 내 마음은 평온한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는 여정이다. 내가 잘하는 것, 내가 부족한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사랑하는 것. 이 모든 것을 묻고 배우며 나의 행복과 자유를 찾아가는 소중한 여정이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한 소크라테스는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정확히 알수록 내 삶은 행복에 더 가까워진다는 것을. 누구든 명상을 통해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며 자신에 대해 부단히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나는 나 스스로를 이해함과 동시에 내 주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며 나아가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은 파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으며 또한 내가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내 마음뿐임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그 어떤 파도들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마음이 평정심을 잃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끔 보살펴줄 수 있는 지혜와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지혜와 마음의 여유를 갖고 나 스스로를 돌보고 내 주변 사람들도 함께 돌보며 누군가 기댈 수 있는 듬직한 바위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내 마음속 바위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고 작은 파도들 마저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나는 또 한 번 삶에 대해 배우고 감탄하며 기쁨을 느꼈다. 내게 주어진 이 여정에 감사함을 느끼며 오늘도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겠다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