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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은 Mar 29. 2021

"태양은 아침에 떠오르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 아침 꽤 가벼운 기분으로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습관처럼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어 이메일을 확인했다. 주급이 들어왔다는 메일이었다. '흠, 이보다 더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왠지 시작이 좋은 게 하루가 술술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모처럼 쉬는 날. 대부분 사람들이 일하는 수요일에 혼자만 쉰다니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더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하루의 시작이 다른 날 보다 더 여유롭게 느껴졌다. 평소대로라면 오전에 할 일을 다 끝내 놓고 오후에는 마음 편하게 쉬는 편한 하루 일과. 지난주와 지지난주, 그리고 지지 지난주처럼 말이다. 자칫 무료할지 언정 평온한 하루.


느릿느릿 스트레칭을 마치고 아침에 설거지 한 그릇들과 컵들을 정리한 뒤, 배달된 소포를 정리했다. 그때 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뭐지?' 의아해하며 핸드폰 화면을 확인해보니 보스에게서 온 이메일이었다. 덜컹. 심장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한번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이메일을 열어 읽기 시작했다. 지난 월요일 내가 처리한 일에 실수가 있었는데 그 일을 어떻게 핸들하고 싶은가 내용이 짧게 적힌 이메일이었다.


난 곧 심란해졌다. 심장은 빨리 뛰기 시작했고 얼굴의 열기가 느껴졌다. 최대한 기억을 되짚어 지난 월요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날은 심한 두통때문에 진통제를 챙겨 먹으면서 최대한 일을 빨리 처리하고 퇴근하고 싶었었다. 실수가 생긴 부분을 할 때 옆에서 동료가 '다시 한번 체크해야 하지 않나요?' 물어봤을 때 분명 순간적으로 '다시 한번 해야 하나?' 갈등했지만 나는 이내 '괜찮을 거야'라고 그 동료와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아... 미연에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던 문제였는데...' 나는 머리를 책상에 박고 오랫동안 자책하기 시작했다. 

왜 항상 눈 앞에 곧게 뻗은 길을 보지 못하고 당장 쉬워 보이는 길, 하지만 실은 훨씬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려 빙빙 돌아가야 하는 길을 어리석게 선택하고 후회를 하는지... 나는 나 스스로가 너무 바보스럽고 미웠다. '그때 그 동료가 한 말을 듣고 다시 한번 확인하기만 했다면... 지금 이 순간 이렇게 괴롭진 않았을 텐데...' '왜 나는 매번 이렇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 왜 매번 쉬운 선택만 하려고 하고 바른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인지. 쓸데없는 자만심이 지나쳐서 벌을 받는 것인 건지.'


우울함이 내 온몸을 짓눌렀고 내 머리와 어깨는 축 늘어져서 나는 애꿎은 쿠션만 자꾸 누르고 또 눌렀다. 아무도 없는 집 거실에 앉아 머릿속엔 자책감과 자괴감에 둘러싸여 나는 얕은 숨을 쉬고 있었다. 거실 시곗바늘은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겠어!'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켜서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쓴 후 집 밖으로 재빨리 걸어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문을 열고 아파트 밖으로 걸어 나갔다. 가장 먼저 초록잎을 매단 나무들과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고 약간 쌀쌀하지만 기분 좋은 바람이 온몸을 스쳐 지나갔다.


그냥 걷기 시작했다. 바쁘게 오가는 차들과 사람들. 저마다 다들 중요한 일들이 있는 거겠지. 그렇게 지나가는 차들과 사람들을 구경하며 나도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 아침에 출근할 때는 제대로 보지 못한 작은 집들과 차들, 그리고 작은 동물들, 다람쥐들과 참새들, 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너희들도 있었구나.' 출근도 퇴근도 아닌 길을 걷자니 괜히 미소가 번졌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매일 빨리 걸었던 것일까? 어차피 목적지는 변하지 않는데...'


그때 마침 내가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 아버지와 함께 등산하던 날 아버지 말씀이 떠올랐다. 꽤 경사진 구간 앞에서 몸에 힘을 잔뜩 주고 빨리 올라가려는 나를 뒤따라 오시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등산을 즐기는 방법은 천천히 가는 것이야.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위도 구경하고 나무들도 한번 보아주고, 숲의 냄새고 천천히 들이마셔보고. 또 가끔 새소리 들도 들어보고 바닥의 흙의 감촉과 나무들의 뿌리들도 한 번씩 보아주고, 그렇게 걸으면 하나도 힘이 들지 않지. 정상에 올라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등산 자체를 즐기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매일 등산해도 참 즐겁고 좋단다.


그 말을 듣고 나도 곧 몸에 힘을 빼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걷기 시작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눈앞에는 정상 말고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희한하게도 주위를 둘러보니 파란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로 높게 자라난 큰 나무들과 그 사이사이로 사이좋게 피어난 작은 꽃들과 식물들이 가득했다. 너무나도 희한한 경험이었다. 분명 나는 눈을 뜨고 등산을 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눈을 뜬 것 같은 아주 이상한 체험이었다.



문득 '그때와 지금, 나는 과연 다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 눈뜨면 출근 준비, 또 어느새 퇴근 준비, 그리고 침대.  그 사이사이 쌓인 스트레스는 수다와 음식으로 해결하고 또 새로운 하루를 반복하는 일상. 그 일상이 어느덧 습관이 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 워커홀릭이 되어있었다. 모든 일을 다 빠르게 처리하고 끝내버려야 마음이 편해지고 막상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니 앉아만 있는 밤들.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또 안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그나마 나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겪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기분이었다.


무엇을 위해서... 우린 모두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정말 이렇게 살다 보면 행복해지는 것일까?내가 무엇을 하고 먹고 입고 쓰고, 어디서 일하고 살고, 그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육체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에서 결핍이 생긴다면 나는 그것을 알아차릴 능력은 있을지.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웬만한 육체적인 것들이 어느 정도 안정된 삶에서 오는 이 결핍은, 이 갈증은, 과연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 것일까? 


그동안 내가 읽은 수많은 자기 계발 서적들은 안타깝게도 이 갈증을 해소해주지 못했다. 그 책들을 분명 읽을 때는 그 저자들의 말들이 모두 완벽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 스스로에게 어떠한 문제가 생기면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방법이어도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아무렴 그 완벽해 보이는 방법들도 저자들 개인의 삶과 경험에서 나온 것들일 텐데 그들과 다른 나와 내 삶, 내 문제들에 완벽하게 맞을 리 만무했다. 결국 내 삶과 내 문제들에는 나 스스로만의 답을 찾아야만 한다. 나 스스로를 계속해서 연구하고 배우고 깨달으며 그것을 승화시켜서 글로 써내는 것이 내가 살고 싶은 길, 내가 추구하고 싶은 길이다. 



소로의 삶처럼 자연과 함께 자신의 삶을 연구하는 길,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만의 행복과 꿈을 찾는 삶을 살고 싶다. 짧지만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내 작은 세상에서 걸어 나가 더 큰 세상을 한 바퀴 둘러보고 집에 돌아오니 뭔가 기가 뚫린듯한 기분이었다.


난 좀 더 단순해져야 한다. 그때그때 현재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조금 더 행복해져있지 않을까? 마음속에 몰아치는 감정의 파도들도,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생각들도, 좀 쉬게 해 주고 말이다. 지난 월요일 실수로 인해 일주일도 넘게 지난 오늘 이 새 하루를 자책감, 자괴감, 우울감등에 빠져서 낭비하면 안 된다. 지나치게 속상해하는 것을 피하고 힘들지만 내 실수를 인정하고, 고치고, 앞으로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발전하는 것에 힘을 쓴다면 나는 그 실수를 통해서 더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어른이지만 아직도 계속해서 많이 성장해야 한다. 더 배우고, 또 배우고, 아주 많이 배워야 한다. 끊임없이. 그러니 실수를 했을 때 아주 잠깐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을 느끼되 그 마음들에 휩쓸려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지. 그리고  항상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기억하고 하루를 살아도 소중하게 살고 싶다.  실수를 하더라도 쿨하게 인정하고 또 나 스스로를 보듬어줄 수 있는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반드시 새벽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눈을 비추는 빛은 어둠과 다를 바 없다. 눈을 뜨고 깨어 있어야만 새벽이 찾아온다.앞으로도 수많은 새벽이 남아 있다. 태양은 아침에 떠오르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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