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게 밤공기가 되어주고 싶다

by 이제은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너의 발걸음은 유난히 무겁다

무엇이 그리도 조급한지

무엇이 그리도 초조한지

달님의 인사도 보지 못한 체

걷고 또 걸어 익숙한 문을 열었다.


그리곤 하루 종일 밝게 켜있던

머릿속 스위치가 달칵 꺼지자

고요한 집안처럼 머릿속도 잠잠해졌다

너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있다가

문득 잊었던 무언가를 기억해낸 듯

창가로 걸어가 닫혀있던 커튼을

양손으로 가볍게 걷어올렸다.


곧 너의 두 검은 눈동자는

드넓게 펼쳐진 검은 밤하늘 아래

은은히 빛나는 수많은 불빛들을

그대로 조용히 머금었다.

때마침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2월의 밤공기가 소리 없이 들어와

두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지나갔다.


그러자 하루 동안 콕콕 쌓였던

작고 큰 응어리들이 하나 둘

긴 한숨과 함께 쏟아져 나와

이내 보이지 않는 밤공기 속으로

흩어져 말끔히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듯이.


너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밤공기를 한가득 들이마셨다

적당히 차가우면서도 적당히 시원한

아주 기분 좋은 밤공기였다.

너는 생각했다.

'원래 2월의 밤공기가 이렇게 좋았었던가.'


몸과 마음이 함께 정화되는 듯한 기분.

하루 종일 움츠려 자고 있던

'나'라는 세포들이 눈을 뜨고

활기차게 움직이며 묻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뭐였지?'

'내가 사랑하는 것은 뭐였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뭐였지?'


곧 너는 깨닫는다.

네가 하루 동안 잊고 있던 것은

'나'를 소중히 돌보는 일임을.

밤공기를 한가득 들이마시며

하루 동안 애써준 '나' 스스로를

사랑으로 부드럽게 돌보는 일임을.


난 네게 밤공기가 되어주고 싶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과

네가 사랑하는 것들과

또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들

언제든 네가 기억할 수 있도록

반가운 밤공기 되어주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