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은 Jun 13. 2022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

하루 명상: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평온한 일요일 아침, 마음에 작고 샛노란 콩나물 머리처럼 근심 하나가 슬며시 고개를 들어 내밀었다. '어, 이상하다. 나는 분명 아무것도 심은 적이 없는데?' 이번 주 내내 대부분의 일들은 수월하게 넘어갔고 딱히 신경을 곤두세우며 걱정할 일도 없었다. 어려운 일들이 두세 개 있었으나 그마저도 다행히 잘 해결되었기에 오히려 감사했다. '혹시 내가 모르는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었나?' 나는 천천히 지난 일주일을 돌이켜보았으나 역시나 크게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혹여 기억해야 하는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졌다. 그러자 마치 물을 먹은 콩나물의 키가 자라듯 불안을 느낀 근심의 키가 한 뼘 더 자라난 듯했다.


왜 항상 근심은 이렇게 날씨도 화창하고 조용한 날 찾아오는 것일까? 나는 내가 심지도 않았는데 불쑥 자라난 근심이 얄미웠다. 생긴 것도 삐쭉 마른 것이 도저히 정이 가지 않았다. 나는 근심을 잊으려 밖에 나가 걷기 시작했다. 우거진 초록 나무들이 만들어준 시원한 그늘 밑을 걷고 있는데 공원 언덕에 피어난 예쁜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가 우아하게 날아오르는 작은 갈색 참새들이 보였고 그 참새들이 날아가는 연한 하늘빛 도화지 같은 하늘도 보였다. 계단 옆으로는 깻잎을 닮은 풀잎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벤치 옆으로는 호박잎 같이 넓적한 이파리를 가진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갑자기 강한 풀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공원 한쪽에서 초록색 모자를 쓴 남자가 윙윙 거리는 기계로 잔디를 깎고 있었다. 남자 왼편에는 산책을 나와 신이 난 강아지들이 공원의 이곳저곳을 열심히 냄새를 맡으며 모험 중이었고 주인들로 보이는 중년 남녀는 한가로이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언덕 쪽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아래쪽에 비해 한적하고 조용한 언덕 위쪽에는 한 쌍의 젊은 남녀가 바위에 걸터앉아 이야기 중이었다. 살짝 앳된 얼굴들이 마치 학생들 같아 보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보였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어두워 보이지는 않았다. 담담한 표정과 진지한 눈빛을 보아하니 중요한 이야기 같아 보였다. 나는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기 위해 멀찍이 떨어져서 걸었다.


왠지 그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내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아주 작은 일들도 참 크게 느껴졌던 시절,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빴던 것인지 매일 24시간이 모자라게 느껴졌었다. 그만큼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던 것일까? 마치 게임 속 퀘스트(임무)를 하나씩 완수해서 아이템(보상)을 모으고 계속해서 레벨업(성장)을 하듯 나는 지속적으로 작업 (task)을 완료해나갔다. 하나의 작업이 끝나면 다른 작업이 시작되는 사이클이었고 나는 현재 작업을 끝내기도 전에 다음 작업을 이미 머릿속으로 해치워버리고 있었다. 내게 있어 진정한 휴식은 일을 완성한 뒤 얻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든 내게 주어진 일들을 모두 빨리 처리한 뒤 쉬고 싶어 했다. 조금, 아니 많이 무리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런 행동 패턴은 어느덧 습관이 되었다.


나는 최근에 들어 이 오래된 습관의 위험을 알아차렸다. 바로 지나치게 효율성만 추구하면 정작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일들을 다루어도 마찬가지였다.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적은 에너지를 들여 일사천리로 일들을 처리하고 나면 개운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허전했다. 편하게 쉬면서 맛있는 것을 먹고 재밌는 방송을 봐도 그 허전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모든 임무는 성공적으로 완료했는데도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는 그 답을 나티코의 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에서 찾았다.


고지대 밀림에서 지내던 어느 날, 우리는 공양을 마친 뒤 불상을 옮기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거대한 청동 불상을 산 정상에 있는 작은 정자까지 날라야 했습니다. 누군가는 권양기가 달린 랜드로버가 있었고, 다른 누군가는 불상을 올려놓고 굴릴 통나무가 있었습니다. 미얀마인들이 얼른 돕겠다고 나섰고, 태국인들도 소매를 걷어붙였습니다. 그리고 승려도 여러 명 달려들었지요. 하지만 우리 서양인 승려 중 몇 명은 소동을 피해 뒷걸음을 쳤습니다. 그리고 이곳저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 일을 더 빨리, 더 손쉽게 해치울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아잔 자야사로 주지 스님은 제 어깨에 손을 얹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티코, 이 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행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네. 이 일을 끝내고 우리가 어떻게 느끼느냐, 그 점이 중요하다네.”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중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은 곧 돈이고 돈은 곧 시간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아끼면 돈을 아낄 수 있고 그러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지금껏 나는 효율성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아끼는 것에만 몰두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열심히 아껴서 모은 시간과 돈은 허전한 마음을 달래는데 쓰였다. 그럴수록 구멍이 난 항아리에 물을 들이붓는 것처럼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돈과 시간을 모두 허비했다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 그 마음은 쉽게 짜증으로 이어졌고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도 함께 힘들게 만들었다. 미안함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


그런 나의 괴로운 마음에 아잔 자야사 주지 스님이 나티코에게 한 말씀은 따뜻한 봄비가 되어 내렸다. 오랜 시간 거칠고 갈라진 바닥을 천천히 적셔주었다. 지금껏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던 내게 그는 이렇게 묻는 듯했다. "그동안 너는 어떻게 느꼈었느냐?" 마치 그동안 나를 괴롭혀오던 허전함을 모두 꿰뚫어 보듯 말이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내 허전함의 원인을 알아차렸다. 어떤 일을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에 대한 나의 태도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일에 임하는가가 때로는 결과보다 훨씬 중요하다. 또한 일을 끝맺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과정에서 얻는 배움과 성취감이며 이것이 바로 일에 대한 진정한 보상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일에 대한 결과가 내 기대와 다를지라도 나는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을 수 있음도 함께 깨달았다.




평온한 일요일 아침, 마음에 작고 샛노란 콩나물 머리처럼 고개를 내민 근심 덕분에 나갔던 산책을 통해 나는 귀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삐쩍 말라 도무지 정이 안 가게 생긴 근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 근심이 아니었다면 나는 내 오랜 습관을 제대로 바라볼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제대로 된 질문을 할 기회도 없이 앞으로도 계속 허전하게 살아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앞으로 내 마음에 근심이 고개를 내민다면 그것은 무조건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론 근심도 이렇게 도움이 될 때가 있으니 말이다. 혹시라도 마음에 허전함이 다시 찾아오거든 스스로에게 이렇게 부드럽게 속삭여주고 싶다.




이 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행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네. 이 일을 끝내고 우리가 어떻게 느끼느냐, 그 점이 중요하다네.




Photo by Madison-Nickel-from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