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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은 Nov 13. 2023

금, Fracture

당신에게 선물하고픈 시

금 (Fracture)

                                                                   안젤라


우리 집에는 노란 찻잔이 하나 있습니다.

개나리의 노란색 같기도 하고 레몬의 노란색 같기도 하지요.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손길로 색이 칠해진 고운 찻잔은

한 손에 들어올 정도로 크기가 아담합니다.

선물 받은 첫날 그 찻잔을 바라볼 때의 설렘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바라만 보아도 만져만 보아도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매끄럽고 가벼운 감촉도 나를 기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찻잔에 작은 금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나는 아주 소중히 다루었는데 언제 어디서 그 금들이 생겨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나는 찻잔을 바라볼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선명한 금들 때문에 전처럼 미소 지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슬픔과 괴로움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지요.

나는 찻잔을 들어보았습니다.

아직도 노랗고 아담한 찻잔은 여전히 매끄럽고 가벼웠습니다.


찻잔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마치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 같았습니다.

내가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는 얼마나 예쁘고 소중한 존재였었을까요?

바라보기만 해도 만져보기만 해도 얼굴에 미소를 번지게 만드는 설렘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나도 함께 커갔습니다.

한 해가 지나고 새 한 해가 돌아올 때마다 설렘은 줄어들고 하나 둘 금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예쁘고 소중하게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매일 거울을 바라보며 내가 얼마나 불완전한 사람인지 다른 사람들이 알아챌까 봐 불안했습니다.

마음에 난 상처들은 덮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기에 급급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래야만 전처럼 온전히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아, 찻잔만큼 작은 마음을 가진 나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나를 예쁘고 소중하게 바라보지 못하면서 다른 이들의 시선이 왜 그토록 중요했는지 말이죠.

어린아이가 뛰어놀다 넘어져서 이마에 상처가 생기면 우리는 제일 먼저 무엇을 하나요?

일단 아이의 놀란 마음을 다독거려 준 뒤에 상처를 소독하고 호호 불어줍니다.

그리고 상처가 잘 아물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보살피지요.

내 마음에 난 상처들도 똑같은 치료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미 금이 되어버린 나의 상처들아,

더 잘 돌보고 보살펴주지 못해서 미안해.

너희들은 더 이상 나의 가장 못난 부분들이 아니라

나의 가장 가장스럽고 사랑스러운 부분들이야.

아프고 힘든 시기를 잘 참고 견뎌내 준 내가 나 스스로에게 주는 멋진 훈장들이야.”


이미 생겨버린 금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 금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충분히 변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금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덜 예쁘고 덜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훈장들이 나를 진짜 금(金, gold)으로 만들어주지요.

나는 다시 우리 집 노란 찻잔을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합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예쁘고 소중한 눈길로 바라보아주고 싶습니다.



실제로는 금이 가지 않은 우리집 예쁜 노란 찻잔.



https://youtu.be/hjGA3aAjf70?si=1cW9yoKMzTWiJ6-f

Stephan Moccio의 음악 Fracture을 듣고 영감을 받아 쓴 시입니다. 

잔잔하고 벨벳처럼 감싸안는 피아노 선율이 아주 아름다운 음악입니다.

월요일 아침을 시작하면서 듣기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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