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선물하고픈 시
금 (Fracture)
안젤라
우리 집에는 노란 찻잔이 하나 있습니다.
개나리의 노란색 같기도 하고 레몬의 노란색 같기도 하지요.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손길로 색이 칠해진 고운 찻잔은
한 손에 들어올 정도로 크기가 아담합니다.
선물 받은 첫날 그 찻잔을 바라볼 때의 설렘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바라만 보아도 만져만 보아도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매끄럽고 가벼운 감촉도 나를 기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찻잔에 작은 금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나는 아주 소중히 다루었는데 언제 어디서 그 금들이 생겨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나는 찻잔을 바라볼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선명한 금들 때문에 전처럼 미소 지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슬픔과 괴로움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지요.
나는 찻잔을 들어보았습니다.
아직도 노랗고 아담한 찻잔은 여전히 매끄럽고 가벼웠습니다.
찻잔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마치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 같았습니다.
내가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는 얼마나 예쁘고 소중한 존재였었을까요?
바라보기만 해도 만져보기만 해도 얼굴에 미소를 번지게 만드는 설렘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나도 함께 커갔습니다.
한 해가 지나고 새 한 해가 돌아올 때마다 설렘은 줄어들고 하나 둘 금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예쁘고 소중하게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매일 거울을 바라보며 내가 얼마나 불완전한 사람인지 다른 사람들이 알아챌까 봐 불안했습니다.
마음에 난 상처들은 덮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기에 급급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래야만 전처럼 온전히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아, 찻잔만큼 작은 마음을 가진 나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나를 예쁘고 소중하게 바라보지 못하면서 다른 이들의 시선이 왜 그토록 중요했는지 말이죠.
어린아이가 뛰어놀다 넘어져서 이마에 상처가 생기면 우리는 제일 먼저 무엇을 하나요?
일단 아이의 놀란 마음을 다독거려 준 뒤에 상처를 소독하고 호호 불어줍니다.
그리고 상처가 잘 아물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보살피지요.
내 마음에 난 상처들도 똑같은 치료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미 금이 되어버린 나의 상처들아,
더 잘 돌보고 보살펴주지 못해서 미안해.
너희들은 더 이상 나의 가장 못난 부분들이 아니라
나의 가장 가장스럽고 사랑스러운 부분들이야.
아프고 힘든 시기를 잘 참고 견뎌내 준 내가 나 스스로에게 주는 멋진 훈장들이야.”
이미 생겨버린 금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 금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충분히 변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금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덜 예쁘고 덜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훈장들이 나를 진짜 금(金, gold)으로 만들어주지요.
나는 다시 우리 집 노란 찻잔을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합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예쁘고 소중한 눈길로 바라보아주고 싶습니다.
https://youtu.be/hjGA3aAjf70?si=1cW9yoKMzTWiJ6-f
Stephan Moccio의 음악 Fracture을 듣고 영감을 받아 쓴 시입니다.
잔잔하고 벨벳처럼 감싸안는 피아노 선율이 아주 아름다운 음악입니다.
월요일 아침을 시작하면서 듣기 좋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