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쌀쌀해진 가을 오후 찬 바람에 외투를 여미며 걷고 있었습니다. 길 반대편에서 십 대로 보이는 한 소년과 소녀가 걸어오고 있었지요. 아직 앳된 얼굴들에 생기 가득한 눈빛들을 가진 아이들에게서는 봄날의 설렘이 느껴졌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멀리서도 그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해맑은 표정의 소년이 장난스럽게 소녀의 팔을 슬쩍 밀쳤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발그레 웃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그들의 수줍은 눈길 속에 막 피어난 꽃같이 사랑이 존재했습니다.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한 모녀가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는 고운 분홍 옷과 하얀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엄마와 사이좋게 걸어오던 아이는 삐진 듯 팔짱을 끼고 입술을 내밀며 갑자기 길가에 멈춰 섰습니다. 맞은편에서 걸어가던 나는 일부로 속도를 줄여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엄마는 허리를 숙여 아이와 눈을 맞추고는 아이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아이는 숙였던 고개를 빼꼼히 들더니 엄마를 향해 배시시 웃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도 함께 배시시 웃어보았습니다. 아이를 차분히 타이르는 엄마의 깊은 인내심 속에 온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 같은 사랑이 존재했습니다.
사랑은 어느 순간에 존재할까요? 서로의 다름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순간에 사랑은 존재합니다. 용기를 내어 나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상대방에게 한걸음 다가갈 때에도,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고 정성껏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에도 사랑은 존재합니다.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내게 알려줍니다. 내가 먼저 사랑이 되어 다가가면 세상도 사랑으로 내게 다가와준다는 것을요. 앞으로 누군가를 만날 때엔 봄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고 싶습니다. 어떤 설레는 인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https://youtu.be/DVYkRIaea-c?si=Bu9JgTePVn3mwEI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