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구

창작소설

by 이제은




분명 나간 건 저 전구인데 왜 이렇게 내 마음이 허전한지 모르겠다. 외롭고 괴롭다. 도대체 왜 하필 밥 하기 전에 전등이 나가서 결국 우리들을 화나게 하고 미워하게 해서 싸우게까지 만들었는지. 나를 쳐다보던 상대방의 상처 받은 눈빛과 이어서 나를 향해 날아와 내 마음에 꽂히는 날카로운 말들.


생각해보면 사실 우리는 꼭 전등이 아니어도 많은 날 이렇게 사소한 일들로 부딪혀서 서로 싸우고 상처를 주었다. 매번 분명 머리로는 이런 식의 반복되는 괴로움을 멈추고 싶지만...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나는 또다시 이 괴로운 굴레 속에 갇혀버린다. 그리고 상처 받고 상처 주기를 반복한다. 난 도저히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나는 변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그저 즐겁게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 먹고 싶었다. 그런데 그 계획이 전등이 나감으로써 내 맘대로 되지 않자 그게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 무엇보다 이런 내 마음을 상대방이 알아주길 바랐다. 그렇게 한마디 툭 내뱉은 말, 눈빛, 그리고 행동에 상대방도 날을 서고 받아치자 나는 더 화가 났다. 평상시에는 우리는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그날 서로의 상태(컨디션)를 파악해서 누군가의 말에 날이 박혀있더라도 이해하고 감싸주며 넘어갔다. 그러나 어쩌다가 둘 다 지친 하루를 보내고 온 뒤, 특히 배가 고픈 날에는 항상 크게 탈이 났다. 처음에는 서로의 짜증섞인 말을 한 마디씩 받아치면서 마치 누구의 창이 더 날카로운지 겨루는 듯 서로를 살짝 찔러대는 말들을 했다.


서로를 더 잘 안다는 것은 좋을 때도 있지만 안 좋을 때도 있다. 서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더 상처 줄 수 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던진 말이 상대방의 마음에 꽂힐 때 상대방의 눈빛을 통해 내가 얼마나 더 깊게 상처를 준지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느새 우리는 저녁을 준비하다 말고 서로를 노려보며 분명 후회할 말들을 던지고 내리꽂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각자 방으로 들어가 문을 세게 닫고는 굳게 걸어 잠갔다.


‘다시는 말도 안 해. 내가 쟤랑 다시 한마디라도 먼저 하면 성을 갈고 말지.’


그리고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문 앞에 주저앉았다. 순간적으로 내가 했던 말들과 상대방이 내게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머리가 폭발할 듯 가득 팽창했다. 이내 눈물방울들이 후드득후드득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번에는 자책의 굴레에 빠졌다. '멈추고 싶어. 너무 외롭고... 슬프다.'


그래. 나는 무엇보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그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것이 너무 속상하고 미안했다. 일부러 상처 주려고 했던 말들이 너무도 후회가 됐다. 그러고는 갑자기 두려움을 느꼈다. '내가 이런 심한 말들을 했는데도 상대방은 계속 나를 사랑해줄까? 다시 소중하게 대해줄까?' 난 또 그렇게 뜬눈으로 긴 밤을 지새웠다.






얼마나 잠든 걸까? 목이 말라 아직 어두운 거실로 나가 냉장고 문을 열어 물통을 꺼내는데 갑자기 등 뒤로 부엌 어둠 속에서 무언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순간 온몸이 굳어서 뒤를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괜찮아. 여긴 내 집이야. 내가 잘못 본 거야.’ 나는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며 냉장고 빛에 의지해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작은 전구가 놓여있었다. 고개를 들어 부엌 천장을 보니 전구가 빠져있었다. '아까 상대방이 전구를 빼놓았나?'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구의 속삭임 같은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 미리 알려주고 싶었는데.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참아보려고 했는데 도저희 내 힘으로는 버틸 수 없었어. 하필이면 너희 둘 다 배고플 때 나가버려서 내가 정말 면목이 없다.”


전구는 그 말을 하고는 이내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훔치는지 작은 어깨를 들썩였다. 난 내가 지금 이 전등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게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이 안쓰럽게 울고 있는 전구를 달래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구의 둥근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러나 전구는 쉽게 울음을 멈추지 않았고 나는 계속해서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전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반복해 말했다. 그러면서 작은 전구의 이곳저곳이 검게 그을린 것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새로 사 왔을 때는 첫눈처럼 새하얗었는데...어느새 전구는 제 몫을 다하느라 그을렸던 걸까?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더 열심히 전구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어느새 전구의 작은 어깨의 들썩임이 좀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휴우, 다행이다'. 나는 안도하며 이마의 땀을 닦는데 순간 부엌의 불이 환히 밝아졌다. 그 빛이 너무 눈이 부셔 나는 재빨리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자 나는 거실 소파에 누워있었다. ‘내가 언제 거실에 나와서 잠들었지?’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몸을 일으키는데 현관문이 열리며 상대방이 걸어 들어왔다. 거실의 시계를 보니 평소에 상대방이 한참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도대체 아침 일찍 어딜 다녀왔는지 궁금은 했지만 나는 괜히 얄미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상대를 본체만체 나름 연기를 하면서 다시 소파에 등을 돌리고 누웠다. 부스럭, 부스럭, 지익, 즈즈즈. 부엌에서 소리들이 들려왔다. ‘아, 다시 좀 잠 좀 자려는데... 시끄럽게 뭐 하는 거야?’ 나는 마치 거실이 내 차지 인양 툴툴거렸다. 그리고는 실눈을 뜨고 마치 염탐하듯 몰래 상대방이 있는 듯한 부엌을 바라보았다. 상대방은 다소 위태로운 자세로 의자 위에 올라가 팔을 뻗고는 전구를 끼워 넣으려고 하고 있었다. 놀란 마음에 나는 소파에서 뛰쳐 일어나 부엌으로 달려가 상대방의 다리와 의자를 꼭 붙잡았다. 상대방은 꽤 당황했는지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안전히 전구를 끼워 넣고 의자에서 내려왔다.



우리는 굳이 다른 곳을 쳐다보면서 적당히 퉁명스럽게 대화하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말했다. “지금 원래 잠잘 시간 아니야?” 그러자 상대방이 멋쩍어하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잠이 일찍 깨서. 아침 산책 다녀왔어.” 어색한 1초가 지나고 내가 다시 말했다. “전구... 사 왔네?” “응. 그냥 산책 간 김에 사 왔어.” 상대방은 태연히 말하며 얼른 식탁에 놓인 봉지를 치웠다. 난 여태껏 한 번도 야행성인 상대방이 아침산책을 가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랬나 싶어 슬그머니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보니 특유의 쑥스러울 때 짓는 약간 뾰롱퉁한 아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순간 어제 전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어깨에 손을 대고 말했다.


“... 고마워.”


그러자 뾰로통했던 상대방의 굳게 다물린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상대방이 신나서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원래 아침 산책은 커녕 산책도 안 나가는데 오늘은 자신이 진짜 인심을 썼다며. 어젯밤에 상점 여는 시간까지 확인을 한 후 그 시간에 딱 맞춰서 아침 일찍 전구를 사 왔노라며. 어느새 상대방은 약간 으스대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어깨를 높이 흔들었다. 그러자 나도 나 또한 원래 처음부터 그 말을 하나도 믿지 않았다며, 내가 너를 알지 누가 알겠느냐, 질세라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신나서 조잘대며 도대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연스럽게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하는데 상대방이 말했다.


“잠깐만, 불 좀 키고.”


그러고 보니 우리는 재잘거리느라 전구를 갈고 나서 불도 안 키고 어두운 부엌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상대방이 스위치를 누르자 환한 빛이 새 전구에서 쏟아져 나와 우리들을 감싸 안았다. 우린 평소보다 좀 더 붓고 다크서클이 가득한 서로의 얼굴을 보고 순간 빵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누구의 얼굴이 더 초췌한 지 놀려대며 우린 둘 다 깨달았다.


‘아, 어제 나만 괴로웠던 것이 아니구나. 나만 힘든 게 아니었어. 상대방도 나만큼 괴롭고 힘들어했구나!’


순간 내 시야에 부엌 캐비닛 구석에 놓인 작은 전구가 들어왔다. 어젯밤 이 작은 전구가 내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 사실이 아니었을까? 난 웃으며 그 전구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전구에게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고마워 작은 전구야. 네 덕분에 나는 앞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대할게. 나 스스로를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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