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미나야
아침부터 열심히 일을 하고, 나의 일상을 벗어나지 않으려 조용히 산책을 다녀왔다.
예술의 전당을 살포시 품고 있는 우면산 무장애 길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아닌가 싶다.
이 길로 산책을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축복이다.
산책을 하면서 기도를 했다. 너를 위한 기도를 했고 동우를 위한 기도를 했다.
간절히 이루어 지기를 소망하면서 말이다.
퇴근하면서 너의 친할머니와 통화를 했다.
자식도, 감당할 수 없는 자식이라면 과감하게 버리라 했다.
본인은 괜찮으니 인연을 끊으라고 한다.
나는 그렇게 못한다. 나는 내 자식에게 끝까지 책임을 다하고 싶다.
설령 그로 인해 내 인생이 고통스러워도, 힘들다고 피하고 싶지는 않다.
오죽 속상하면 할머니도 그렇게 말씀하셨겠냐만은
나는 사랑을 모르는 할머니가 가여웠다.
부모에게 아니 적어도 나에게 자식은
세상 책임 가져본 나의 이름 같은 것이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고,
부모라는 이름으로 겸손해 졌고, 참았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간절히 신에게 기도한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말 못하게 참고 억울해도 참았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망신스러운 일을 면전에서 감당했고
그래도 창피하지 않았다.
부모라는 이름은 늘 자식들을 위해 대신 아프고, 대신 고통 스럽고
그리고 대신 죽어가고 싶다.
하지만
부모라는 이름은 절대로 자식의 행복과 기쁨을 대신해 주고 싶지는 않다.
미나야
나는 이런 것들을 사랑이라 생각한다.
할머니는 자식에게 엄했고, 자립하기를 강요했고, 행여나 본인 말에 반하면 분노했다.
할머니는 사랑의 다른 이름들을 몰랐을 뿐이다.
사랑은 이타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임을 ... 할머니도 처음 부터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사랑하는 미나야
나는 너랑 오빠를 위해 죽는 날 까지 기도할 것이다.
그러니 늘 당당하고 힘내서 살기 바란다.
내일은 달라진 아침 바람에 조금 시원하고 기쁜 하루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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