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끝없이 도망치다 보니 그는 어느덧 어엿한 어른이 돼있었다.
그의 중학생 시절은 심란했고, 고등학생 시절은 진부했으며 대학생 시절은 침울했다. 하지만 새로울 것 없는 그의 삶에도 작은 변화가 찾아왔는데, 그가 1년이라는 긴 공백기간 끝에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나 알만한 명문대를 나왔지만 취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는 몇 번의 도전이 실패하자 자신을 놓아버렸다. 그렇게 1년이 잔잔한 바다처럼 흘러갔다. 하지만 잔잔했던 바다에 얇은 파도가 치기 시작하고, 그는 그 파도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첫 발부터 잘못 내디뎠다는 것을. 발 디딤틀이 없는 지하철, 흘러내리는 땀, 부서질 것 같은 다리,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 그는 빠져나갈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현실에서 긴 시간 고통받아야 했다.
그는 생각을 비우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좀만 참자, 좀만 참자.’
그렇게 그는 혼자만의 사투를 벌인 끝에 묶여있는 족쇄를 풀고,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는 얼른 밖으로 나왔지만 사정없이 내려쬐는 햇볕과 습한 공기가 또다시 그를 괴롭혔다.
미칠듯한 더위에 축축해진 옷이 살에 달라붙고, 머리는 지끈거렸다. 그는 손목에 차고 있는 오래된 로마자 시계를 확인하고는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한 걸음, 한걸음 움직일 때마다 태양빛이 높은 건물들 뒤에 숨었다가 나왔다가를 반복했다. 양산을 쓰거나 부채질을 하거나 옷을 펄럭이는 사람들이 그를 지나쳐갔다.
잠깐이지만 그는 그들 무리에 속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난 뒤, 몰려오는 행복감이 그를 감쌌다. 그는 그제야 세상밖으로 나왔음을 실감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지의 공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공간은 그의 눈앞에 있었고, 그는 그곳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달빛이 드리우고, 거리가 은은한 빛으로 물들자 그의 낯빛도 어두워졌다.
그는 미지의 공간에서 걸어 나와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는 마치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땅만 보고 걸었다.
도시에 울려 퍼지는 시끄러운 경적소리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군단처럼 때를 지어 어디론가 이동했다. 하지만 그에게 그 모든 것들은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편안함이 깃든 집을 향한 열망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는 지하철거울에 비친 어떤 형체를 바라본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앳된 얼굴과 뽀얀 피부는 사라지고, 검게 물들어 초췌해진 얼굴을 가진 다른 누군가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그, 자신이었다.
그는 사람이 하루 만에 귀신같은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문득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져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반쯤 풀린 눈으로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거나 허공을 바라보고 있거나 곯아떨어져 있을 뿐 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또 한 번 그들 무리에 속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째서인지 아까와 같은 행복감 같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는 터덜터덜, 모든 기력이 다 빠진 채로 현관문을 열었다. 집에 들어선 그를 반기는 건 고요한 어둠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있는 방으로 다가가 작게 열려있는 문틈사이로 눈을 가져다 댔다. 암흑 속에서 작은 숨소리만 들려왔다. 준서는 자기 내면으로 침잠한 듯 방 안 텁텁한 공기가 준서의 코로 들어갔다가 입으로 나오길 반복했다. 천천히, 부드럽게. 그는 조용히 문을 닫고,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가만가만 걸어가 거실 창문을 열었다. 썩은 공기와 신선한 공기가 기분 좋게 어우러졌다. 풀 숲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냈다. 곤충들이 사랑을 갈구하는 소리는 밤새 울려댔다.
외로움,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손가락만 한 생명체도 느끼는 감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사랑을 갈구하는 그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도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학창 시절, 그는 몇 번에 사랑을 해봤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허무한 감정을 쫓고 있었는지 알게 될 뿐이었다. 그는 허무했다. 모든 것이 허무했다.
누군가가 평생 곁에서 행복을 책임 쳐줄 것처럼 달콤한 말로 꾀어낸다. 하지만 결말은 슬픈 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그에게 현실도 사랑과 같았다. 세상은 얼음장과 같이 차가웠다. 그는 한참을 그곳에 멍하니 서있었다.
‘첫 출근, 나는 두려움을 가득 안고, 회사로 향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걸어서 오래돼 보이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엄청나게 떨리기 시작했다. 들어가기 망설여졌지만 들어가야만 했다. 나는 곧장 사무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마른 체격에 턱이 각진 남자와 긴 생머리에 딱히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고개를 드는 순간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뭔가 싸했다. 여자는 밝게 받아줬지만 남자는 관심 없다는 듯 나를 무시했다. 기분 나빴다. 하지만 그냥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이곳에 뼈를 묻을 생각은 없었으니까.
서로 간단한 통성명을 하자마자 여자가 그 남자에게 무언가를 속삭이자 남자가 나를 밖으로 불렀다. 그 남자는 은근히 기분 나쁜 말투와 맥 빠진 목소리로 회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설명해 주었다. 사실 잘 듣지 않았다. 아니, 들을 수 없었다. 남자한테서 코를 찌르는 구린내가 스멀스멀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남자와의 고통스러운 동행은 일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집에 도착하니까 밤 10시였다. 그 남자가 잡일을 다 나한테 맡긴탓이었다. 내일도 오늘과 똑같겠지. 벌써부터 내일이 두렵다.‘
그는 마침표를 찍으며 공책을 덮으려던 찰나 일기장의 첫 장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따라 부쩍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밖으로 나가기 싫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가슴이 답답하다.
아버지는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내가 한심하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했다.
‘어머니가 최근 들어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져서 아버지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색해 죽겠다.
특히 같이 밥 먹을 때는 곤욕이다.‘
‘어머니의 귀가 시간은 더 늦어지고 있다.
어머니 말로는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다는데…
그게 사실일까.
해서는 안될 생각이 자꾸만 내 주위를 맴돈다.‘
그는 학생 때부터 종종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면 일기를 썼다. 그는 자신에게 침잠하는 시간이 그 무엇보다 좋았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거짓말처럼 마음이 차분해졌다.
하지만 그는 차분함 속에서 또 다른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는 어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수상한 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늦은 귀가는 기본이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저질체력인 그녀가 매일같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를 미심쩍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그녀와 준서와의 관계가 소홀해졌다는 점이 그를 알 수 없는 의심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그러다 그는 자신이 혐오스러워 공책을 덮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는 더 이상 어머니에 대한 의심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에게는 당장 내일이 더 급했기 때문에 빠르게 씻고 잠에 들었다.
상사의 괴롭힘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 단순히 괴롭히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사이코일지, 그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어서 그러는 건지, 그는 알지 못했다.
의문에 괴롭힘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는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그는 전부터 약간의 우울과 불안증세가 있었는데 그 상사를 만난 순간부터 그의 우울증과 불안은 더 악화되어 갔다.
‘너무 힘들다. 이렇게 참고 버티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어두운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민수님, 저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예요?”
한 번은 그가 참다못해 반항한 적이 있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 그에게 말했다.
“좀 심하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제가 무슨 말만 하면 사사건건 걸고넘어지고, 욕하고, 구박하고. 제 말이 틀렸나요?”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적당히 좀 하세요. 너무 힘듭니다. “
“이 새끼가…”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죠?”
남자가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내뱉으려는 순간 여자가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복도로 나왔다.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지만 싸한 공기는 숨길 수가 없었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죠?”
여자는 그들을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남자는 말을 더듬으며 대충 둘러댔지만 이미 여자는 대강 눈치를 채고 있었다. 여자의 계속된 추궁에 그는 해명을 했지만 그의 말은 공중에서 증발되어 사라질 뿐이었다. 그는 여느 때처럼 회사로 출근했다.
그는 평소처럼 사무실 문을 열고 인사를 했지만 단 한 명도 받아주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그는 당황했지만 평소처럼 일했다. 그 남자조차 그를 무시했다.
다행인 건 남자가 그날 이후로 그를 건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비겁하고, 유치한 방법으로 또다시 그를 절벽 끝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남자가 회사 동료들에게 그를 정신이상자 취급을 하며 그날의 일에 대한 책임을 모두 그에게 떠넘기는 졸렬한 짓을 한 것이다. 그는 화가 났다. 단지 ‘화가 났다’라는 표현은 부족했다.
분노와 치욕스러움이 한 곳에 모여 응어리지고 있었다. 회사 내에서 평판이 좋던 남자는 그것을 이용하여 그를 내몰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살기어린눈을 마주한 여자는 그를 어떤 사람으로 보았을지 여자의 떨리는 눈동자가 그것을 말해주었다. 남자는 동료들이 없는 곳에서 그를 구박했기 때문에 진실은 그들만이 알고 있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애원의 목소리를 내었지만 그들은 그의 진실된 말과 행동들, 뿐만 아니라 그의 존재자체를 외면했다.
그렇게 그는 한 사람의 괴롭힘보다 더 고통스러운 다수의 무관심의 쳇바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 소문은 거대하다. 물론 처음은 미약하다. 하지만 점차 거대한 하나의 성을 이룬다.
한 번 거대해진 성은 무너뜨릴 수 없다. 너무나 견고하며 단단하다. 힘없는 사람들은 성벽에 흠집조차 내지 못한다. 그저 작은 흠집이라도 내기 위해 발버둥칠뿐이다.
그 역시 거대해진 성벽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그가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제는 모두가 나를 싫어한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소용없다.
이제 더는 못 버티겠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마음 같아선 그 자식을 죽여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조용히 그곳을 조용히 떠날 것이다.‘
“저 오늘부로 그만 나오겠습니다.”
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사직서를 건네며 말했다.
“이게 무슨 경우죠?”
여자는 종이봉투에 쓰여있는 ‘사직서’를 보고, 매섭게 눈을 희번덕거렸다.
“죄송합니다, 더는 못 버티겠습니다.”
“그걸 당일날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죄송합니다.”
그는 달리 할 말이 없었고, 고개를 숙인 채 뒤돌아 그곳을 나왔다.
그가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남자와 부딪혔다.
“뭐야, 씨발.”
남자는 그가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남자는 한동안 그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하지만 군중 속에서 다시 예전에 악마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한 명을 둘러싼 군중의 힘은 거셌다.
그는 그 남자의 날카로운 욕이 들려오자 분노와 치욕의 응어리가 터지고 말았다.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강한 다짐 섞인 발검음으로 남자에게 다가가 그동안의 비애와 분노가 담긴 주먹이,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후회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를 주먹이 허공을 가르며 남자의 각진 턱을 가격했다.
그의 주먹을 맞은 남자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고, 그의 꽉 진 손과 얼굴을 올려다본 남자는 그에게서 그때의 눈빛을, 당장이라도 사람 한 명쯤은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살기 가득한 눈빛이 떠올랐다. 그의 거친 숨소리와 고요한 적막만이 그들을 맴돌았다.
그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하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한참을 달린 그는 마침내 지옥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