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그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거실 창문을 통해 햇빛이 그를 붉게 물들게 하자 그는 서서히 일어나 준혁이 깨지 않게 조용히 집을 나왔다.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경적소리를 울리는 차들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눈을 조금이라도 붙였다면 깊은 자괴감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너무 피곤했고, 아무 생각 없이 계속 걸었다. 그렇게 그는 집 앞 공원에 도착했고, 공원 의자에 앉아 어머니가 출근하기만을 기다렸다.
새벽에 공원은 너무나 고요했다. 새벽녘에 공기와 안개들이 그를 감쌌다. 그 속에서 반려견과 여유롭게 걷는 사람들과 출근하기 전 땀을 빼는 사람들이 분주하지만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걸음걸이로 그의 앞을 스쳐갔다.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 하라는 없었고, 식탁은 깨끗했지만 여전히 김칫국물이 남아있었다.
그는 식탁을 지나쳐 아버지의 방 문을 살며시 열었다. 준서는 천장을 바라보며 깊게 잠들어 있었다. 그는 편히 잠들어 있는 아버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가엾게 느껴졌다. 들뜬 마음으로 가정을 꾸렸지만 처절하게 망가져버린 한 남자의 삶이 아버지에게 보였다.
그는 아버지의 삶도 태어나기 전부터 결정이 된 것일까, 만약 한없이 망가져가는 인생도 운명이라면, 그는 신을 원망하고 싶어졌다. 그는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의 비밀은 자신만이 간직하기로 했다.
만약 아버지에게 전한다면 그 끝은 죽음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보다 더 나아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깨지 않게, 현실을 벗어나 잠시라도 꿈속에 머물길 바라며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는 너무 피곤했고, 씻지도 않은 채 그대로 옷만 벗고 속옷차림으로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그는 저 멀리서 검은 새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았다. 그는 검은 새들을 보며 아버지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검은 새들은 점점 그들과 가까워졌다. 검은 새들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그들을 사정없이 쪼아댔다. 그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그의 눈앞에는 넓게 펼쳐진,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푸른 바다가 보였다. 그는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 외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광활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잠시 뒤, 바다 위 허공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차 커지더니 그와 가까워졌다. 그 소리는 환상 속 세상을 누군가 비집고 들어오는 소리였다. 마침내 그 소리는 그와 한 몸이 되기 시작했고, 그는 눈을 떴다. 그의 몸은 땀으로 흥건했다. 무언가 찝찝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방문을 열자마자 그는 하라와 마주쳤다.
“너 어제 왜 안 들어왔니?”
하라는 팔짱을 끼고,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어제 일이 좀 있었어요.”
그는 본능적으로 여기서 더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하라가 그를 따라와 굳게 닫혀버린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직 얘기 안 끝났어 찬솔아.”
화장실에서는 물소리만 들려왔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 세수를 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보았다. 물이 얼굴을 타고 천천히 세면대로 떨어졌다. 그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의구심이 들었다.
불과 몇 주 전, 그가 알던 자신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홀쭉해진 볼과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진하게 물들어 있었다. 잠시 뒤, 흐르던 물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그는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아 놀래라. 뭐해요, 어머니.”
문 앞에서 하라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 진짜 왜 그러니? 솔직하게 말 안 해?”
“뭘요.”
그는 무심하게 말하고 어머니를 지나쳐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담은 병을 꺼내 입을 대고 마셨다.
"어제 왜 안 들어왔는지 말하라고, 안 들어올 거면 연락이라도 했어야지."
그는 어머니가 말해도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또다시 보리차를 마셨다.
“넌 안 되겠다. 나가. 우리 집에서 나가. 빨리 짐 싸고 나가.”
하라가 자포자기하는 듯이 말했다.
“뭐라고요?”
그는 황당해하며 마시던 물을 내려놓았다.
“왜 퇴직한 건지, 어제는 왜 안 들어온 건지 얘기하고 싶을 때까지 들어오지 마.”
"거기서 퇴직얘기가 왜 나와요? 어머니는 어제 뭐 하셨는데요? 어머니도 솔직하게 얘기해 보세요.”
그의 말에 하라의 표정은 무언가 숨기는 게 있는 사람처럼 변했다.
“내가 뭘 솔직하게 말해?”
“제가 모를 줄 알았어요? 어머니, 그냥 솔직하게 얘기하세요.”
그는 어머니의 두 눈을 한치의 물러섬이 없는, 굳건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다 봤어요. 어제 어떤 남자 차에서 내리는 거 다 봤다고요. 그리고 둘이..."
그는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뒤 돌아 흐르는 눈물을 닫았다. 그가 다시 돌아보니 하라는 사라졌고, 도어록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하라가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아버지가 생각났다.
혹시나 자신과 하라의 얘기를 듣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방 문을 살며시 열었지만 아버지는 등을 보인 채 창문을 바라보며 잠들어 있었다. 그는 안심하듯 숨을 내쉬고 문을 닫았다.
그는 잠시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산책을 나갔다. 밖은 어두웠고, 집 앞 공원을 지나고 사람들이 넘치는 번화가를 지나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디인지 모르는 또 다른 공원에 도착해 있었다.
그 공원은 집 앞에 있는 공원보다 더 작았지만 좁은 공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더 많게 느껴졌다. 그는 어떤 백발의 할아버지가 혼자 공원 벤치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노인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그는 노인이 바라보고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노인이 앉은자리에서는 저 멀리 서는 보이지 않던 자기만의 방식대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화목하게 보이는 가족으로 보이는 한 무리에 사람들과 서로를 꼭 껴안아 주고 있는 사람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잠시 노인의 시선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는 곁눈질로 노인을 살폈다. 노인은 아무런 표정변화도 없이 오래된 동상처럼 아까와 같은 자세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는 시선을 돌려 다시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래 이렇게 힘든 건가요?”
그는 왜인지 모르게 그 노인은 인생의 해답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노인은 그를 향해 고개를 약간 돌렸다가 이내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눈물로 인해 희미하게 보이는 노인의 얼굴을 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원래 이렇게 힘들어요?”
“저한테 얘기하신 건가요?”
노인이 말했다.
“저 어떡하죠?”
그가 울먹이며 말했다.
“오늘 아주 힘든 하루였나 보네요.”
“네. 정말 힘들었어요.”
그의 몸은 들썩거렸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추하게 느껴져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저도 당신 나이에 매일같이 울었죠.”
노인은 쑥스러운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에요. 넓게 봐야죠."
그는 무슨 노인의 넓게 보라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 무슨 뜻인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눈물로 인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노인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감정이 추스러지질 않아 길가에 서서 심호흡을 해봤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처지에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그는 넓은 세상이 자신혼자 외롭게 남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가 훌쩍이는 소리에 슬쩍 눈길을 줄 뿐 어떤 위로나 안쓰러운 눈빛조차 보내지 않았다. 그는 근처 벤치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가느라 저녁시간이 한참이 지나고 집에 들어왔다.
준서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몸을 흔들어 저녁 드실 거냐고 물었지만 안 먹는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래서 그는 방에 들어가 처음 느껴본 신기한 경험을 남겨두고 싶어 평소 쓰지도 않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연필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왜 그 노인에게 자신의 속 얘기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질 않아 결국 해결되지 않은 마지막 문장으로 일기장을 덮었다. 그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했다.
‘살다 보면 자신의 행동이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