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터널

8.

by 우산

다음날 아침 그는 침대의 누워 그때의 그 낯선 남자를 떠올렸다.

그 남자는 누구였을까, 아버지보다 좋은 사람일까, 그에게 어머니는 어떤 존재일까.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갑자기 낯선 남자에 대한 생각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아 이번에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는 어머니의 삶을 존중해주고 싶었지만 혼자 남겨질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희생해야 했던 건 사실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웃고 있던 어머니보다 끝없는 고통과 슬픔 속에 잠겨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더 와닿았다.

그가 더 깊은 생각에 빠지려 할 때 하라가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려 그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가 고등학생이던 때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다가 머리가 아플 때면 무작정 밖으로 나가 뛰곤 했다. 그때의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아침공기를 마시며 복잡한 생각들을 지우기 위해 30분이든 1시간이든 일단 뛰었다. 뛰고 나면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기에 그는 억지로라도 뛰었다.

오늘은 매일 가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로 가보고 싶어 초행길을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슬슬 이마에 땀에 맺히기 시작했을 때 그의 주변에서 무언가 얘기를 하며 뛰고 있는 한 부자가 보였다.

그는 친구도 많지 않았고 그나마 몇 없던 친구 준혁도 운동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항상 혼자 했었기에 더욱 그 부자에게 눈길이 갔다. 그는 문득 아버지와 저렇게 나란히 뛰는 게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미 한참을 뛰고 난 뒤였지만 방향을 돌려 집으로 달려갔다. 집으로 허겁지겁 올라와 아버지를 큰 목소리로 불렀다.

“아버지!”

준서는 아직 자고 있었지만 그는 아버지를 흔들어 깨웠다.

“아버지, 일어나세요.”

준서가 비몽사몽 한 상태로 말했다.

“벌써 밥 먹을 시간이니?”

“아니요 저랑 같이 뛰러 가요.”

“아침부터 왜 이래?”

준서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저 믿고 한 번만 해봐요.”

“싫어.”

준서는 다시 베개에 얼굴을 파묻혔다.

어떻게든 안 나가려는 준서와 어떻게든 나가게 하려는 그들의 실랑이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세상밖으로 나오게 하려는 아들과 모든 걱정과 고통을 가라앉히게 만드는 어떠한 환영 속에 머물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준서는 그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마지못해 침대에서 일어나 그의 팔을 붙잡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아버지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죽지 못해 사는 사람처럼 살게 놔둘 수 없었다. 아버지를 지옥의 불 구덩이에서 꺼내줄 사람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닌 그, 자신이라는 것을 그는 은연중에 알게 되었다.

그에게 끌려나가던 준서는 몇 년 전 찬솔이가 중학생이던 때 모두가 잠든 밤에 몰래 밖으로 나가 달려보았지만 몇 걸음도 못 가고 콘크리트 바닥에 자빠지고 말았던 기억이 생각났다. 보이지 않는 어둠의 존재들이 위협하는 소름 끼치는 느낌에 그는 얼마 안 가 그것조차 포기하고 말았다.

준서는 찬솔이의 앞에서 모자란사람 혹은 바보처럼 보이기 싫어 안 가려고 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준서는 자신이 흰 지팡이를 방 한켠에 두고 오로지 발과 감각만을 의지해서 거리로 나선게 얼마만인지 생각했지만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는 아버지와 막상 달리려고 하니 무언가 잊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전에 봤던 장애인 마라톤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떠올라 다시 집으로 올라가 쓸만한 물건을 찾아보았지만 마땅히 보이지 않아 그는 서랍에 넣어둔 줄넘기를 들고나갔다.

밑에서 그를 기다리던 준서는 오랜만에 바깥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그때 그가 엉켜버린 줄넘기를 들고 달려왔고, 그는 집요하게 엉켜버린 줄넘기를 풀어 그와 준서의 손에 묶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는 풀리지 않게 서로를 꽉 묶었다.

그렇게 그들은 각자의 두려움을 안고 앞으로 나아갔다. 호기롭게 나아가던 그들은 몇 걸음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준서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면서 그와 부딪혀 옆으로 넘어졌다.

다행히 그들은 잔디밭에 넘어져 크게 다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에게 연신 괜찮다고 말하며 아버지를 쳐다보았지만 준서는 또다시 현실의 벽을 마주 한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준서는 손목에 묶여있는 줄넘기를 풀고, 가만히 바닥에 앉아 있다가 이내 잔디밭에 누워버렸다.

“아버지, 출발한 지 10초도 안 됐어요.”

그가 누워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지만 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그도 아버지 옆에 누웠다. 그들은 잔디밭에 누워 그는 하늘을, 준서는 풀내음과 뜨거운 공기를 맡으며 잠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 무슨 생각해요?

그가 물었지만 준서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

그가 고개를 살짝 들어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준서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그는 모른 척 다시 누웠다.

“미안하다, 찬솔아”

한참을 코를 훌쩍이던 준서가 뜬금없이 그에게 사과를 했다.

“네? 뭐가요?”

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사실 일종의 연기였을 뿐 그는 아버지의 ‘미안하다’는 말에 담긴 뜻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냥 전부 다 미안하다.”

그는 아버지의 진심 어린 사과에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몰라 얼버무렸다.

준서는 나약해진 자신에 모습에 크게 실망했고, 한없이 나약해진 자신을 세상밖으로 이끌고 나온 아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다 감정이 격해진 준서가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준서는 예전부터 남자가 우는 것은 남성성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입에 달고 살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한 가정의 남자가 세상물정 모르는 아들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우는 모습에 그는 크게 당황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며 하늘을 바라보았고, 5분이 지나도 울고 있는 아버지 곁을 그는 묵묵히 지켜주었다.

“다시 가보자.”

잠시 뒤, 조금은 진정이 된듯한 준서가 흘린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럴까요? 너무 무리하지 말고 오늘은 공원 한 바퀴만 돌아요.”

그와 준서가 잔디밭에서 일어나 바지를 털어 발을 맞추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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