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터널

10.

by 우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깊은 잠에서 깬 준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간호사들과 골골대며 누워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의 옆에는 찬솔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준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니?”

준서가 그에게 기운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준서는 자신의 바보 같은 모습에 한숨을 쉬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더 누워계셔야 돼요.”

그가 다급하게 말했지만 그를 무시하고 걸어가다 간호사와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아버지!”

그는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고 밖으로 나갔다.

병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니 어둠이 내려앉아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준서는 밤공기와 귀뚜라미들이 우는 소리를 듣고 말했다.

"벌써 어두워졌구나"

“네, 거의 9시간을 누워계셨어요."

“이런. 어서 집으로 가자.”

그들은 집으로 향하는 택시를 탔다.

그가 창밖으로 휘황찬란한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준서가 적막을 깨고 말했다.

“사실 그날 다 들었다.”

그는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네? 무슨 말이에요?”

“네가 엄마랑 싸우는 소리”

그제야 그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네 엄마가 왜 나를 떠났는지 모르지만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다.”

준서가 무덤덤하게 말하자 택시기사가 백미러로 그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갑자기 또 무슨 말이에요.”

그는 하루동안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지만 아버지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고생만 시키지 않았어도…”

준서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진솔한 마음속 이야기를 들었다.

긴 세월 그는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그 순간 그는 아버지의 고통을 헤아려보려 하지 않았던 자신을 원망했다. 그제야 그는 아버지의 비통한 심정과 그간의 고통을 조금은 이해하기 되었다.

긴 하루가 지나고 그들은 집에 들어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나자빠져 버렸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들에게 자신의 속사정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한없이 비참해지고 창피한 일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준서는 그날 가슴깊이 후련함을 느꼈다.

그렇게 그들은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오만가지 생각들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하라는 작은 편지만 남겨둔 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그의 집에서는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볼 수도 없었다. 하라의 향기가 남아있는 침대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하라는 전화 한 통조차 오지 않았다. 물론 그도 어머니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스러운 감정에 갇혀 빠져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자 그는 이제 어머니의 얼굴이 희미해졌다. 그럴 때마다 그는 사진첩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려 애썼다. 아직 그에게는 거짓말 같은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는 어머니가 그리웠다. 보고 싶고 그리웠다. 매일매일 생각났다. 어머니의 따뜻하면서 걱정스러움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 같이 텔레비전을 보며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순간들이 그리웠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그들은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준서의 우울증과 충동적인 현상은 날이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었고, 그도 준서와 같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망가져가는 몸과 마음이 그들을 어두운 심연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이제는 그에게 정신병원은 별채와도 같았다. 평온했고, 차분했으며 그 누구도 자신의 인생에 침범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자주 가는 만큼 통장에 길게 나열되어 있는 숫자들도 함께 증발해버리고 있었다. 그는 이대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에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자신을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했다. 몇 개월이 지나고, 그동안의 노력의 결실을 맺은 건지 그는 이제 어느 정도 삶의 여유가 생겨 아버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끝끝내 준서는 그의 손길을 거부했다. 역시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일 것일까, 그의 정신적인 고통이 더 커지자 그는 아버지를 놔버렸다. 더 이상 예전으로 되돌릴 수도, 더 나아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그는 여느 때와같이 복잡한 심신을 견뎌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이럴 거면 퇴사하지 말고 어떻게든 버틸걸 그랬나’ 후회를 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기에 그는 머릿속을 비우려 애쓰며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온 그는 먼저 아버지의 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문을 여는 순간 그는 얼어붙고 말았다. 어두운 배경에서 준서가 시체처럼 방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자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 옆에는 약통이 엎어져 있었고, 그 안에 약들이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에 그는 단번에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버지!”

그는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께 달려가 몸을 사정없이 흔들었지만 준서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는 그 약에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약통을 집어 들어 뒤에 적힌 약명을 보았다. 그건 수면제였다.

준서는 1년 전부터 불면증에 시달렸고, 수면제에 의존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준서는 순간에 끓어오르는 충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그는 119에 전화를 걸면서 아버지를 어떻게든 깨우려고 끊임없이 흔들었다. 그때 준서가 정신을 차리더니 이내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는 당황스러워 몸이 굳었다. 잠시 뒤 구역질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다시 아버지에게 달려가 상태를 살폈다. 그는 변기를 붙잡고 남아있지도 않는 음식물을 뱉어내는 아버지의 심각하게 야윈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준서는 초췌한 몰골과 며칠 굶은 사람처럼 볼은 움푹 파여있었고, 몸은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준서는 1년 전부터 밥 한 톨도 먹지 않고, 군것질만 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준서는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더니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다시 서서히 눈이 감았다.


이전 09화끝없는 터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