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그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절망에 빠진 한 남자의 끝을 보고 말았다.
서로를 의지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달리고, 같은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 밥을 먹고, 소소한 얘기들을 나누며 작은 희망을 점차 키워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깨우려 노력해 봐도 힘없이 축 늘어지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에게 작디작은 희망조차 시들게 만들었다. 그는 지난날의 후회들이 필름처럼 스치듯 떠올랐다.
하지만 후회는 후회로만 남을 뿐 되돌릴 수도 지울 수도 없었다. 그는 아버지를 잡으려 노력했다는 합리화는 하고 싶지 않았다. 붙잡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 더 명확할 것이었다.
그는 온종일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 곁에서 자기 자신을 자책하며 밤을 새웠다. 준서는 또다시 병원에서 눈을 떴다. 준서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누군가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그가 아버지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또 병원이냐."
준서는 단번에 병원임을 알아차리고 힘없이 말했다.
"네."
그들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 왜 그러신 거예요?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그가 고개를 들어 차분하게 말하다가 이내 감정이 격해졌다. 준서는 입을 다문 채 먼 곳을 응시했다.
"아버지까지 떠나면 전 어떻게 살라고요!"
그의 외침과 함께 적막이 찾아왔다. 그의 외침은 준서의 가슴을 후벼 팠다.
"미안하다."
그 한마디뿐이었다.
그의 주치의는 웬만하면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죽지는 않지만 또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한동안은 옆에서 지켜보라는 경고의 말을 했다, 그는 다음날부터 매일 출근하던 인력사무소도 가지 않고, 아버지의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요란한 믹서기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극단적인 시도가 있고 나서 그는 일차적으로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아버지를 챙겨드릴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들어 쳇바퀴 같은 삶을 벗어나겠다고 되뇌었다.
그는 사과 주스가 피로해소에 좋다는 말을 뉴스기사에서 본 기억이 나서 눈을 뜨자마자 근처 마트에서 사과를 잔뜩 사서 냉장고에 넣어놓았다.
그리고 사과 몇 개를 꺼내 어떠한 감미료도 넣지 않고 사과를 믹서기에 갈아 컵에 담았다. 그는 그 컵을 들고 잠들어 있는 아버지에게 향했다.
방문을 열자 자고 있을 줄 알았던 준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는 깜짝 놀랐지만 전부터 돈독했던 사이인 것 마냥 아버지를 대했다.
“아버지 손 줘봐요.”
그는 아버지께 사과 주스를 건넸다.
"이게 뭐야?"
준서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냥 사과주스예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좀 있다가 마실게."
준서가 컵을 내려놓으려고 하자 그가 팔을 붙잡고 말했다.
“지금 드세요.”
준서는 마지못해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한 번에 들이마셨다.
“그런데 아버지, 어디 가세요? 웬일로 아침 일찍부터 옷을 갈아입고 계세요?”
“아니 그냥 눈이 떠져서…”
준서가 얇은 반팔을 입으며 말했다.
“옷 갈아입은 김에 오랜만에 저랑 뛰고 올래요?
그는 1년 전과 같이 물었다.
“그럴까?”
준서가 생각보다 순조롭게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어서 그는 의외의 눈빛으로 아버지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들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해가 내리쬐고 있는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 1년 전처럼 뛰어보는 거예요. 저 믿으시죠?”
그가 서로의 손을 줄넘기로 묶으며 말했다.
“하나, 둘, 셋 하면 뛰는 거예요. 하나…둘…셋!”
그들은 오랜만에 뛰어서 그런지 2km도 뛰지 못하고 지쳐 쓰러졌다.
“아버지, 1km만 더 뛰어요.”
그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더 뛰자고?”
“딱 1km만 더 뛰어요.”
그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산책로를 바라보며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해보자.”
준서도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의욕이 끓어올랐다.
그렇게 2.5km, 2.7km, 2.9km 3km, 언제 끝날지, 끝은 어디일지,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안고 묵묵히 앞만 보고 뛰었더니 어느새 끝에 도달해 있었다.
그는 지친 숨을 몰아쉬며 뒤로 돌아보니 길게 뻗은 산책로를 보며 생각했다.
‘많이도 왔네’
그들은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고, 몇 달 만에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 식사를 했다. 그가 할 줄 아는 요리라곤 계란찜과 된장찌개 밖에 없었지만 새로운 시작을 하는 마음으로 요리 영상을 보며 몇 가지 음식을 더 했다.
“아버지, 앞으로는 꾸준히 저랑 아침마다 뛰어요.”
그가 뜨거운 찌개를 한 입 먹으며 말했다.
“그래, 알겠다.”
아침부터 체력이 고갈된 그들은 다시 젓가락질에 집중했다. 식사를 마치고 그릇을 치우고 있던 그에게 준서가 말했다.
“찬솔아, 네가 노력해 준 만큼 나도 노력해 볼게.”
그는 아버지의 표정과 눈빛에서 굳은 결의가 보였다.
그는 짧은 대답과 함께 흐뭇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노력해 볼게요.”
준서가 수면제를 입 속에 들이부었던 그날, 준서의 눈앞에 자신과 같은 모습으로 쓰러져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그는 빠르게 방을 훑어보았다.
오래된 장롱과 누우면 삐그덕 대는 소리가 나는 침대가 제일 먼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옛 생각을 부르는 쾌쾌하고 오래된 나무 냄새가 그를 10년 전 잊고 있던 기억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그 남자의 모습은 그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는 문간에 서서 멍하니 쓰러져있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날의 기억은 그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는지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쥐어짜는듯한 고통과 구토가 나올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 고통은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갔고, 그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걸어갔다. 한 발, 한 발 내딛기 시작했을 때 그는 차가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을 때 어디선가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아버지!’
그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찬솔이 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에는 그도 자신의 아버지와 똑같은 선택을 했던 것이다.
병원에서 깨어난 그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그리고 그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확신을 갖게 해 준 찬솔이의 한마디가 강하게 뇌리에 꽂혔다.
‘아버지까지 떠나면 저는 어떻게 살라고요!’
그가 다시는 기억하기 싫었던 그 끔찍한 장면을 찬솔이에게 물려줄 순 없었다. 하지만 그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고, 그에게는 만회할 기회가 있었다.
찬솔이에게도 끔찍했을 그 기억을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웃으며 얘기할 수 있게 만들고 싶은 강한 의지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