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어둑어둑 어둠이 내려앉은 서울은 밤하늘에 별과 같았다.
빽빽하게 들어찬 건물들은 밝은 빛을 뿜어내고, 하늘을 찌를 것처럼 우뚝 쏟아있었다. 그들은 그 하늘아래에서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남자의 회색 벤츠를 타고, 꽉 막힌 도로를 달렸다. 남자는 자신의 집이 카페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 말은 10분 동안 어색한 공기 속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차는 앞으로 나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사방에서 시끄러운 경적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는 조수석 창문을 열어 숨을 들이마셨다. 상쾌한 밤공기 속 뿌연 매연가스가 섞여 그의 코로 들어왔다.
갑갑했던 마음은 더 검게 물들었다.
그는 창문을 닫고,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저희 어머니랑은 언제부터 만나신 거예요?”
“음… 아마 2년 다 되어갈 거예요.”
2년 전, 그의 어머니가 이상해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는 그것도 이 남자 때문이었던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저는 카페 사장이었고, 하라는 직원이었죠.”
남자가 말을 이어갔다.
“잠깐만요, 어머니가 카페일을 했다고요?”
“네. 몰랐어요?”
“네…”
“항상 저녁에 와서 마감 때까지 하다가 갔어요.”
그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그는 생각했다.
남자는 곁눈질로 그를 흘끔거리더니 그에게 말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하라가 저나 당신한테 숨긴 게 많네요.”
그는 아무 말 없이 시시각각 변해가는 바깥풍경을 바라보았다.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은 어지럽기만 했다. 그의 마지막 풍경은 남자의 집이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깨끗한 외관, 은은하게 켜진 노란 조명, 고요한 분위기. 그 모든 것들이 안정적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이런 곳에서 산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가 알던 어머니의 이미지가 호화로운 건물 속으로 영영 감춰진 것 같았다. 열어볼 수도, 들여다볼 수도 없는 그곳으로. 그는 차에서 내려 남자와 함께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잠깐만요, 그런데 혹시 어머니께 말씀드렸어요?”
그가 멈칫하더니 남자에게 물었다.
“뭘요?”
남자가 뒤 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오늘일이요.”
“아니요, 아직 말 안 했어요. 하라도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죠…”
남자의 심란한 얼굴에서 어딘가 씁쓸함이 묻어 나왔다.
그는 어머니에게 향하는 한걸음 한걸음이 유독 무겁고, 길게 느껴졌다.
그는 어머니를 만나면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어머니는 어떤 모습과 눈빛을 하고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웃는 표정일지, 화난 표정일지, 당황한 표정일지, 아니면 염오와 증오의 표정일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는 두려웠다.
여태껏 보지 못한 새롭고 낯선 어머니를 보게 될 것만 같았다. 왜인지 모르게 어머니는 자신과 아버지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 떠난 것 같았다. 그 불길한 생각이 그의 마음 한편에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그는 곧 알게 될 진실을 향해 또 한걸음 내디뎠다. 그는 남자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는 한숨을 푹 쉬고, 엘리베이터 속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에는 고뇌에 잠긴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 남자는 핏기 없는 얼굴에 불안에 떨고 있는 눈과 헝클어진 머리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 남자의 머리를 가지런하게 정돈하고, 속으로 되뇌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하지만 그의 굳은 결의는 어머니를 마주한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빨래바구니를 손에 든 채로 놀란 눈으로 그와 남자를 번갈아 흘기는 모습에 그도 얼어붙었다.
마치 무언가를 잘못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오랜 시간 어머니를 봐왔지만 그 눈빛의 의미는 그녀 자신만 알 수 있는 내면 속 속삭임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내면으로 빠져들 수 없었다. 그저 어머니의 떨리는 두 눈을 바라볼 뿐이었다.
“네가 어떻게…”
하라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그는 그녀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말없이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녀도 말없이 그의 품에 안겼다.
뜨거운 그의 눈물이 그녀의 어깨에 스며들었다. 그의 눈물이 그녀를 따듯하게 감싸 안아주었다. 예고 없이 찾아온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그는 왜 우리를 버리고 떠났냐고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막상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하니 ‘화’가 아닌 깊은 ‘안도김’이 들었다.
“내가 데려왔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가 말했다.
그녀는 그의 품에 안긴 채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도 그녀의 초점 없는 눈빛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품에서 나와 화장실로 들어갔다.
붉어진 눈시울과 눈물로 인해 촉촉해진 얼굴로 그들 앞에 서있기 창피했다. 문 너머에서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잠깐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고성이 오가는 소리가 문 틈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그는 찬물로 얼굴을 헹구고 다시 거실로 나갔다.
“나한테 말도 없이 왜 찬솔이를 데려왔냐고!”
문을 열자 그녀의 목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말하면 네가 데려오라고 흔쾌히 받아줬을 것 같아? 나도 이제 네가 누군지 모르겠다.”
남자의 실망 섞인 목소리가 고요한 거실에 울려 퍼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찬솔…”
그가 그들에게 다가가자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찬솔아…”
그녀가 말했다.
물이 그의 턱끝으로 뚝뚝 떨어지고, 그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