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터널

3.

by 우산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추운 겨울이 다가왔을 때였다.

대학교에 복학하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던 그에게 한통에 전화가 왔다. 그는 전화를 받았지만 받자마자 후회하고 말았다. 며칠 전부터 소개팅 얘기로 계속 전화를 걸었던 그의 유일한 친구 예찬이가 또다시 괜찮은 여자가 있다며 그를 구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전화가 오면 매번 거절했지만 이번에는 진지하게 얘기를 들어보았고, 예찬이가 30분 동안 설득한 끝에 그는 예찬이의 간절한 부탁을 받아들였다.

사실 그는 설렘 가득하고 헤어지면 모든 게 부질없어지는 그런 뻔한 연애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는 고집과 자기 합리화로 인해 4년째 혼자였다.

주변 친구들은 모두 짝을 찾아 떠나가고 항상 쓸쓸하게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가는 게 그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겨울의 한기를 따듯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어느덧 약속시간은 가까워졌고, 그는 머리에 한껏 힘을 주고 옷은 최대한 단정하게 입고 여자 한번 못 만나본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무런 무늬도 없는 짧은 패딩을 입고, 그 안에는 로고가 작게 그려진 반팔티를 입었지만 그마저도 패딩에 가려졌다. 그는 답답하다는 이유로 패딩 안에는 항상 반팔을 입었다. 마지막으로 무난함에 얇은 회색목도리를 코까지 매주었다. 그를 가로등 하나 없는 곳에서 본다면 못 보고 지나칠게 분명했다. 눈에서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 그는 딱히 특별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쉽게 이성을 만날 수 없었고 항상 수줍고, 조심성이 많고, 말수도 적었지만 그는 자신의 이런 모습조차도 사랑해 줄 여자를 원했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30분 일찍 나와한 오래된 주택을 감성적으로 꾸며낸 카페에 들어가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10분... 20분... 정확히 30분이 지났을 때 한 여자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 여자를 바라보았고, 그 순간 그는 자신의 결정이 후회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주먹만 한 얼굴에 눈 코 입에 조화가 아름다웠고 눈은 또 어찌나 큰지 계속 보고 있으면 빠져 들어갈 것만 같은 호수를 담고 있었다. 그녀는 호수 같은 갈색눈동자로 그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랑에 빠져 멍해진 그의 눈빛이 티가 났던 모양이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인사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키가 꽤 큰 편이었는데 그녀의 정수리가 그의 코까지 와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연갈색 롱코트가 그녀를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게다가 굽이 높은 구두까지 신으니 그야말로 그녀는 흠이 없어진 완벽한 여자가 된 것이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와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아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짧은 순간에 그는 묘한 떨림을 느꼈다. 일단 만나긴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그는 얼음이 둥둥 떠있는 커피잔만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 그녀는 눈도 잘 마주쳤고, 말도 또박또박 잘했다. 너무나 대비되는 두 사람이었다. 그는 이대로면 또다시 홀로 몇 년간 지내야 될 것 같은 위기감에 떨리는 마음을 숨기고 대차게 물었다.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전공이 뭔지, 이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사실 예찬이가 이미 다 알려준 사실이었다. 어색한 공기와 정적을 견디다 못해 형식적이고, 재미없는 질문을 한 것이다.

그녀는 그보다 한 살 어린 사회복지 전공생이었다. 그는 자신보다 어린 사람은 만나본 적 없지만 눈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반대로 그녀도 예의상 똑같이 물었고, 그녀도 이미 알고 있을 사실들을 그는 차근차근, 어딘가 정신이 다른 곳으로 가있는 사람 혹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게끔 신중하게 말했다.

그의 차분하지만 어딘가 급해 보이는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정적이 흘렀고, 그는 빤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시선을 느꼈다.

"아 참 성함을 안 물어봤네요."

대뜸 그녀가 물었다.

"아 그러네요. 저는 이준서라고 합니다."

그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는 이하라입니다. 반가워요."

"이제 슬슬 일어날까요?"

"어... 그럴까요?"

그는 벌써 헤어지기 싫었지만 쓸데없이 배려심이 넘치는 탓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카페를 나와 무심결에 휴대전화를 확인해 보니 어느덧 한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는 너무 어색하고 긴장을 해서인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꽤 오래 대화했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의 의기소침한 모습과 조금이나마 기대를 하고 이 자리에 나온 자신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였다.

그는 그녀가 먼저 말을 해주기를 기다렸지만 그녀가 구두앞코를 돌바닥에 툭툭 찍어대며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자 그는 아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는 이 상태로 집으로 간다면 그녀의 구두코처럼 자존감아 바닥을 찍을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떼는 순간 하라가 그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같이 밥이라도 먹어요."

그는 해가 지는 것도 모른 채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그는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되지 않았다. 그의 침울했던 모습은 점차 밝게 물들었고 그 옆에는 하라가 있었다.

그는 그녀에 대해 강한 확신이 들어 청혼을 했고, 그녀는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들은 2년이라는 짧은 시간이 흐르고, 곧바로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들의 결혼식은 작고 소소하게 진행되었다.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를 마주하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사람들과 절대 잊지 못할, 죽을 때까지 마음 깊은 곳에 영원히 남을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뿐인 아들 찬솔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찬솔이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울며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밝기만 한 날들이 펼쳐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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