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기이한 힘을 지녔다.
과거는 지나갔으며 끝난 현상이다.
그러나 과거는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
부정적으로든 긍정적으로든.
과거를 이겨낼 힘이 필요했다.
우린 그 힘을 태명에 담았다.
전보다 더 밝고 더 긍정적인,
부르고 듣기만 해도 즐거운 그런 이름.
'햇살이', 적절한 이름이었다.
햇살이는 한여름 내려쬐는 햇살만큼 강했다.
무럭무럭 자랐고, 새로운 행복을 선사했다.
이전에 못 봤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통과 몸통이 구분되어 있었고,
실타래 같은 탯줄이 보였다.
4개의 작대기는 팔다리란다.
하나하나 변화가 보일 때마다
우리는 웃음을 금치 못했다.
커가는 만큼 아내는 힘들어졌다.
임신 초기 가장 큰 변화는 입덧이다.
우리는 긍정적인 검진을 필두로
평소 자주 가는 맛집으로 향했다.
밀면 맛집이다.
남향사람인 우리는 밀면을 사랑한다.
밀면은 냉면과의 전쟁에서 매번 승리한다.
"설렁탕을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해"
그 맛난 밀면을 아내는 한입도 먹지 못했다.
덕분에, 아니 졸지에 나는 밀면 파티를 벌였다.
임신은 부부의 삶을 모두 변화시킨다.
하지만 '변화의 양'은 분명 차이가 난다.
밀면 이야기는 적나라한 예시다.
아기는 아내의 영양소를 빨아먹는다.
남편은 아내의 밀면을 빨아먹는다.
아내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1명을 머금었지만 1인분도 못 먹는다.
인간의 신체는 참 부조리하다.
허기를 부둥켜안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우리는 운행 경로를 조정한다.
호수에서 햇살이와 한 바퀴 걷기로 한다.
여름이나 여름 같지 않다.
선선한 바람과 햇살이 함께한다.
아내의 기분은 조금 나아진다.
햇살이의 위로일까?
미미하지만 하늘에 무지개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