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다.
아내가 김해로 떠난다.
담이를 두고서.
우린 육아가 처음이었지만,
육아는 힘들다는 것을 서로 공감했다.
힘듦을 줄이기 위해 우린 육아 효율을 추구했다.
누군가가 육아를 하면,
누군가는 다른 것을 한다.
그게 취미생활이어도 상관없다.
육아 사이사이 휴식을 가미한다.
이상하게도 보통 휴식의 비중은 내가 더 높았다.
육아의 비중이 적었지만 내가 더 빨리 지쳐버렸다.
담이의 샤우팅에 대한 내성이 내가 더 낮았다.
HP가 얼마 남지 않은 나를 아내는 쉽게 알아봤다.
그때마다 내게 달달한 휴식시간을 선사했다.
고마웠다.
주양육자이며 임신 후 몸도 성치 않지만 아내는 담담히 나아갔다.
다만 한편으론 두려웠다.
담담함이 쌓여 우울이 되는 상황을 꽤 봐 왔기에,
아내에게 휴식을 선사하고 싶었다.
"김해 한 번 내려갔다 오는 게 어때?"
나는 제안했다.
마침 아내 친구의 결혼식도 있다.
장인장모님도 쉬는 날이시란다.
아내는 고민했다.
부양육자의 육아스킬이 마냥 달갑진 않았나 보다.
그러나 결국 김해로의 휴가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2박 3일 동안의 독박육아가 시작됐다.
사실 나는 자신만만했다.
"힘들지만 누구나 하는 게 육아다.
그 육아를 내가 못할 리가 없다."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주문을 실천했다.
담이를 위한 하루를 설계했다.
담이는 설계대로 잘 먹고 잘 놀았다.
그렇게 첫날 밤이 찾아왔다.
근데 이 녀석이 자질 않는다.
수면의식도 잘 끝났고, 밥도 정량으로 먹었는데 운다.
"음.. 울음은 그냥 의사표현 수단인 거야"
자위해 보지만 운다.
계속 운다.
옆으로 누워 토닥인다.
밤새.
둘째 날이 다가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한쪽 어깨가 아프다.
아니 아픈 수준을 넘어 담이 왔다.
잠든 자세가 문제였나 보다.
테니스를 4년 쳤고 신체에 나름 자신 있었다.
그러나 하룻밤만에 담이는 웃으며 담을 선사했다.
피폐해진 어깨를 이끌고 아침수유를 시작한다.
밤새 낑낑되서 그런지 잘 먹는다.
온전히 하루를 담이와 보낸다.
담이는 뒤집기는 하나 되집기는 못한다.
영유아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은 호흡문제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한시도 개인시간을 누릴 수 없다.
아이가 잠들었을 때도 바쁘다.
설거지를 하고 젖병을 소독한다.
빨래를 하고 밥을 먹는다.
중간중간 선잠에서 깬 아기를 달랜다.
신기하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간다.
담이를 앉고 베란다로 나간다.
평소와 달리 바깥 풍경이 아름다워 보인다.
닭장 안에 갇힌 닭처럼 밖을 30분간 바라본다.
나가고 싶단 욕구가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셋째 날이다.
아침이 왔다.
언제나처럼 놀아준다.
그런데 이유를 모르겠지만 담이는 심통이 나있다.
전설의 국민템들을 모두 꺼내 들었지만,
심통은 잦아들지 않는다.
안아줘도 안된다.
밥도 먹기 싫단다.
나의 머릿속 선택지가 하나하나 사라진다.
조급함이 몰려온다.
조급함의 끝자락에서 나는 결국 전화를 건다.
아내에게 SOS를 요청한다.
아내는 올라오는 기차표를 앞당긴다.
그렇게 나의 삼일천하는 끝이 났다.
회사일, 집안일, 육아일 등.
세상엔 다양한 일이 존재한다.
우리는 종종 일을 저울질한다.
일의 경중을 따지고 든다.
내 일이 상대방의 일보다 더 중요하고 힘들다 포장한다.
그러나 일의 경중 따위는 없다.
함께 헤쳐나갈 일만이 존재한다.
합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의 일을 인정해 주는 태도다.
독박육아 3일은 내게 귀중했다.
육아일을 웃으며 하는 아내를,
결국 나는 존경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