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말로 T발 C다.
공감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이유는 감정이다.
감정이 적다 못해 멸종했다.
내 감정이 없는데 타인의 감정을 만질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최근엔 명상에 꽂혔다.
명상 연속 수행일이 200일을 넘어섰다.
명상은 알아차린 후 놓아버리는 활동이다.
감정, 생각, 감각을 알아챈다.
그리고 이를 놓아버린다.
명상은 많은 장점을 지닌 활동이다.
다만 이 세상에 모든 행위는 장단이 함께 존재한다.
나의 감정은 명상과 함께 한층 더 멀어졌다.
담이를 처음 만난 순간이 기억난다.
그땐 몰랐다.
빤히 나를 보는 이 존재가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담이가 집에 왔다.
이유 없이 운다.
안아주면 어여쁜 미소를 날린다.
잠들다 악몽에 놀라 칭얼대고,
작은 블록을 향해 웃으며 기어간다.
매사 무뚝뚝한, 감정표현이 없는 나의 삶과 대조된다.
가식 없이 울고 웃는 담이를 보며 생각한다.
"담이는 나보다 인생을 더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작은 존재로부터 배운다.
내 안의 가식을 떨쳐버린다.
다양한 감정을 발산한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슬퍼한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화낸다.
감정 기복은 차츰 커진다.
담이를 본다.
담이는 나의 감정을 빠르게 흡수한다.
내가 기쁠 땐 함께 기뻐하고,
내가 슬플 땐 함께 슬퍼한다.
문득 생각한다.
담이에겐 좋은 면만을 보여주고 싶단 사실을.
그때부터 나는 다시 나의 감정을 가린다.
날뛰는 감정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내 옆엔 담이가 있다.
나는 부모이기에 이를 해나가야 한다.
담이로 인해 감정의 폭은 넓어졌다.
담이가 자아낸 변화는 만족스럽다.
그러나 담이를 위해 다시 나는 감정을 가린다.
이전보다 더 어렵다.
넓어졌기에 가리기 위한 더 큰 천이 필요하다.
덮는 과정이 힘들지언정 후회되진 않는다.
담이가 선사한 변화는 만족스럽다.
"기쁠 땐 더 기쁘고 슬플 땐 더 슬퍼지는 것"
그것이 육아다.
"커져버린 감정을 조율하는 능력을 지닌 자"
그것이 부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