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마음과 겸손한 마음만 간직하고.
2014년 현지 법인장으로 새로 일을 시작하고 몇 해 뒤 50대를 맞았다.
그렇게 쉴 새 없이 나의 커리어는 발전 성장했을지언정 가족 중 누가 아프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몸의 병이 아니라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기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신문기사에는 40대, 50대가 직장에서 나가야 하는 한국의 팍팍한 현실을 계속 보았던 터라 해외에서 근무하지만 한국기업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동일한 시각으로 나 자신을 봤다.
가능하면 보수적으로 세상의 현상을 보고, 가능하면 큰 위험을 덜 지는 쪽으로 생각하다 보니 몸은 해외 현지에 있어도 국내 고용시장의 상황으로 나 자신을 봤다.
그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지만,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세상을 보고 살았다.
결론적으로 나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너무 보수적일 필요도 없었고, 너무 쫄지 않고 살아도 됐던 것을, 너무 보수적이고 너무 쫄아서 살았던 것 같다. 한편으로 후회되고 한편으로 민망스럽다. 너무 쫄아서 산 것 같아서.
좀 더 대범하고 크게 세상을 보고 좀 더 대범하게 행동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지만,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자위해 본다 못내 민망해서.
그렇게 살다 보니 밖의 일에만 신경을 썼고 가족 안의 일, 가족 구성원중에 아픈 이가 있는데 미련하게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 나의 책임이다.
30대에 일을 배웠고, 40대 전성기를 지나, 50대에는 막연하나마 이제 정리를 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하며 살았다. 그렇기에 50대는 지나가는 시간이 못내 아쉬워 더더욱 일을 붙잡고 밖의 일에 몰두하며 살았다.
50대를 뒤돌아보며 좀 더 다정스럽게, 좀 더 세심하게 가족을 대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잘하면 될 것이라 생각하고, 내가 앞서서 나가면 아이들이 그것을 자연스럽게 보고 배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자식은 그들 나름대로 타고난 성정과 기질이 있고 그것이 지금의 사회환경과 맞는지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가이드를 했어야 했다.
하물며 회사 일을 하면서 기획안을 몇 날 며칠 신경을 써가면서 작성하는데, 자녀의 타고난 성정과 기질 그리고 그 자녀가 맞고 있는 가족, 사회 환경 등에 대한 분석은 일절 하지 않고 살았다.
그냥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제활동을 잘해서 넉넉하게 교육을 시키면 다 잘 될 줄 알았고 그렇게 50대도 미련하게 안의 일에는 눈감고 살았다.
모든 것이 정성을 들이기 나름인데, 자식의 미래를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던 기억이 없다.
해외 현지의 다른 두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그리고 혼자 한국으로 보내놓고, 멀리 혼자 유학을 보낸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그것을 몰랐다. 너무 무심했다.
나의 커리어는 발전하고 성숙기를 맞았을지언정 자녀의 고통과 힘듦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무지로 인해 2025년 50대 마지막해를 화려하게 보냈다.
그런 연유로 브런치 글을 멈춰야 했다.
아픈 가족을 사지에서 구해내고 다시 회복시키기 위한 과정을 치러내느라 봄을 지나 가을을 맞으며, 세 계절을 보냈다. 그리고 무사히 사지에서 구해내고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미완성이나마.
그리고 그 제자리로 돌려놓는 날 나의 커리어는 다시 시작되었다.
사람의 운이 크게 바뀔 때 나타나는 징조라는 제목의 유튜버를 봤다.
천 지 인, 세 측면에서 운이 바뀌는 징조가 나타난다는데 하늘의 운이 바뀌는 가장 큰 징조는 타이밍이라고 했다. 그래 가족을 다시 원래 상태로 회복시킨 날 바로 그날 나에게 새로운 일을 하늘이 주는 기막힌 타이밍을 경험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내가 일하던 무대로 나와 일을 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정년으로 퇴직할 나이에 다시 나와서 현역의 일을 하고 있다.
그것도 기막힌 타이밍을 경험하면서.
그러나 일기에 이렇게 쓴다.
감사한 마음만 가질 것이며, 절대 오만하지 않도록. 죽는 날까지.
해외 현지에서 근무를 하면서 40대에 시작했던 아침 기도 루틴을 지금까지 잘 지키고 있다.
방석이 없어 수건을 깔고 기도를 하느라 무릎이 까지고 피가 나서 군살이 생기는 정도가 되었지만 기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번생은 내가 스스로 운을 바꿔 끝까지 간다는 생각으로 살다 보니 60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감사한 마음만 간직하고, 오만해지는 것을 절대 경계하면서 브런치 글을 50대 소고로 다시 시작한다.
이제는 안과 밖을 두루 살피는 현명함과 여유를 가져야 할 때라는 것을 안다. 일을 하지만 가족의 면면을 세심히 챙기는 것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 2024년 11월 브런치를 시작할 당시, 은퇴한 상황에서 나의 삶을 뒤돌아 보는 과거형의 글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변해 다시 현역으로 일을 시작했고, 다시 현재형으로 글을 이어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