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심은 대로 거둔다.
1992년 1월 겨울
대기업에 입사해서 오리엔테이션 교육을 받고 각자 면담을 통해 부서배치를 받았다.
당시 나고 자란 곳이 지방이라 그 부근의 사업장에 배치받고자 면담을 했다.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서울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당연히 지방의 사업장에 배치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당황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당시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본의 아니게 우물 안에서 나오게 되었다.
2000년 2월 어느 날
유럽 사업을 담당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담당 임원의 호출로 들른 그의 방에서, 아시아의 오지 국가사업을 담당하는 것을 제안받았다.
말이 좋아 제안이지 명령이었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하루아침에 담당지역이 바뀌었다.
2004년 1월 어느 날
직속 상사가 담당하고 있는 오지국가에 단신으로 장기 출장을 가라고 명령한다.
가지 못할 이유를 수만 가지 들었지만 역부족이다.
정말 가기 싫은 곳이었지만, 가족을 생각하며, 내면의 거부하는 심정을 억누르고 받아들였다.
짐을 싸서 비행기에 올라 내키지 않은 발걸음을 옮겼고, 그것이 나와 가족의 삶의 방향을 180도 바꾸는 순간이 될 줄은 몰랐다.
2006년 2월 어느 날
현지 법인장 사무실에 들러 업무 보고를 하고 나오는데 서울에서 전화가 왔다.
현지 법인장 포지션 이직 제안이었다.
헤드헌터와 일정을 이야기하고 끊었다.
그리고 얼마뒤 본사에서 현지 출장온 임원과 시내 호텔 로비에 앉아 생애 첫 이직을 위한 면접을 해외 현지에서 경험했다.
나의 경험과 미래 비전에 대해서 장황하게 떠들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말들이지만 호기 넘치게 다 아는 듯이 떠들었다.
하여튼 그렇게 이직을 하고, 또 예기치 않게 삶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바뀌며 흘러갔다.
2014년 3월 어느 날
현지에서 회사를 퇴사하고 국내로 복귀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두어 달 어찌할까 고민하며 놀고 있었다.
서울에서 이메일이 하나 '띵똥'하고 들어왔다.
10년 전과 비슷하게 현지 법인장 포지션 제안이었다.
헤드헌터에게 설명을 듣고 바로 짐을 싸서 서울로 향했다.
한 달 넘는 절차를 거쳐 다른 대기업 현지 법인장으로 이직을 했다. 삶은 참 역동적이다.
2025년 5월
지난 30여 년 회사 생활, 20년 가까운 해외 현지 생활을 마무리하고 돌아와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고 있다.
삶은 살아내는 것이고, 사랑과 도전이 전부라고 외치며 살아내는 동안, 나에게 찾아온 많은 우연이라고 했던 것들이 어찌 보면 내가 심은 것을 내가 거두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지 그냥 우연히 찾아온 것은 없다는 사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일들을 계속 만나게 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발생하고 나는 이것을 우연이라부르거나, 불운하다거나 또는 운이 좋다는 말로 퉁치고 지나가려 했다. 그 우연의 의미나 원인에 대해서 탐구할 생각도 없이 그냥 지나쳐 버렸다.
사는 동안 어떤 가치관, 신념이라는 것이 생겼고, 그 신념에 따라 한번 사는 거 힘차게 한번 폼나게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살았다. 삶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힘껏 사랑하고 더 높은 정신적 경지를 향해서 불굴의 의지로 나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삶은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대로 만만하게 원하는 경지에 이르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도 역시 도전은 진행 중이고 사랑은 여전히 익지 않고 설 익은 사랑을 하고 있다.
누구를 사랑하고 위한다는 것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좋은 것, 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상대를 조종하거나 유도하려는, 나의 내면에 그러한 심리가 깔려있다는 것을 본다. 여전히 부끄러운 일이다.
젊을 때 열심히 일할 때는 그러한 내면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다.
아니 그러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찾아온 좋고 나쁜 일들이 결국은 내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리가 없었고, 그 원리를 탐구하고 공부할 새도 없이 시간은 흘렀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커갔고, 나와 아내는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었으며, 그 많은 시간을 지나고 난 지금 또 다른 수많은 우연히 벌어지는 일들로 행복과 고통 사이을 오가며 롤러코스트를 타고 있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일은 내가 심은 것이다.
내가 심은 대로 내가 거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