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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노래를 듣다.

by 로맹 제이

80년대 중반

야간 자습이 있던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야간 자습을 마치고 밤 열 시가 넘은 시간

버스에 올라 뒷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창밖을 물끄러미 본다.

몇 정거장을 더 가면 인근 여고의 여고생들도 야간 자습을 마치고 버스를 탄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매일 타기에 이름은 모르지만 낯익은 여학생들이 있다.

알지는 못하지만 서로 주고받는 눈길을 느끼며, 야간자습으로 지친 10대의 영혼을 달랜다.


버스에 팝송이 흘러나온다.

신시사이저가 연주하는 인상적인 전주곡 뒤에

"Remember that piano~~ So delightful unusual~~

That classic sensation~~ Sentimental confusion ~~"

Gazebo의 I like Chopin이 늦은 밤 버스 안에서 흘러나온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 그 버스 안의 감정, 정서가 떠오른다.

야간 자습 후 버스를 탄 수많은 날 중, 오직 I like Chopin을 들은 그날만 기억하고 있다.

그러한 노래들이 있다.

냄새도 아련하게 기억을 자극하지만, 음악도 그러한 기능이 있다.


사춘기 시절

유일한 오락 거리가 라디오 음악 방송이었다.

밤늦은 시간대에 듣는 음악 중 어떤 곡은 감정을 극도로 자극해, 그 멜로디가 세포에 각인되어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그 이후로도, 특히 잠에서 깰 때, 몽환적 상태에서 어렴풋하게 들리는 노래 중 어떤 노래는 내면 깊은 곳의 그 무엇을 자극해서 찾아보게 만드는 곡들이 있다.


대학교 시절 푹푹 찌는 여름날 라디오를 틀어놓고 아마 낮잠을 잔듯하다.

에어컨도 없던 시절, 더위로 선잠을 깬 상태인데, 라디오에서 처음 듣는 노래가 어렴풋이 들렸다.

노찾사의 '사계'가 흘러나왔다.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푹푹 찌는 여름날 낮에 그 노래가 왜 그렇게 와닿았는지 모를 일이다.

며칠 뒤 바로 레코드 가게에 가서 노찾사의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오래도록 들었다.


서울에서 자취하던 20대의 겨울밤

잠결에 들은, 미니 오디오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이문세의 '겨울의 미소'가 타향살이와 낯선 조직생활 그리고 외로운 젊은 영혼을 달래주던 노래였다.

수많은 노래를 들었지만 유독 그 노래를 듣던 그 순간만 기억에 남아있다.


해외 출장 중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동료들, 그리고 클라이언트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방에 돌아와 고단한 몸을 침대에 뉘이고 잠깐 초저녁 선잠을 자고 일어난다.

틀어놓은 TV에서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오고 있다.

Coolio의 Gangster's Paradise가 흘러나왔다.

그때 그 순간 그 음악은 지친 나의 심신을 달래주었다.

현지 레코드 가게를 들러 바로 Coolio의 CD를 사서 귀국해서 한참동안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0년이 지난 2025년 봄, 저녁 늦은 시간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것을 배우느라 야간 수업을 마치고 10시가 넘은 시간 차에 올랐다.

운전대에 앉자마자 라디오를 켰다.

늦은 밤시간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가사가 흘러나온다.

처음 듣는 노래다.

'아름다운 것도 즐겁다는 것도 다 욕심일 뿐~~'


얼른 네이버 뮤직을 켜서 음악을 검색한다.

제목도 고색창연하다.

'위스키 온 더 락'

이런 노래가 있었나 생각하며 집에 도착해 아내에게 그 노래를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몇 해 전 여자 가수가 리메이크한 곡으로 드라마 OST로 인기가 있다는 설명을 해준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그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다.


30년의 직장 생활, 그중 20년은 해외 타지에서 일하며 생활을 했고, 그렇게 30년의 회사생활과 20년의 타지생활을 마치고 원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좀 더 큰 물에서 놀아야 사람이 큰 꿈을 꾸고, 원대한 목표를 세워서, 제대로 사는 것이란 생각에 가족을 데리고 과감하게 무대를 옮겼다.

그렇게 20년을 넘게 살고 돌아와 앉아 극히 공감하는 것이 유행가 가사라니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름다운 것도 즐겁다는 것도 다 욕심일 뿐~~'

그래 다 나의 욕심이지 않았을까.


한국에서 조그만 소도시에 살며 한 곳의 직장을 다니다 퇴직을 했으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해 본다.

조그만 것에 감사하고 사는 삶을 살았으리라.

큰 욕심을 내지 않고 큰 괴로움 없이 지금보다 덜 괴롭게 사는 삶이지 않았을까.

다 부질없는 생각인 것은 알지만 그런 상상을 해본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부질없는 공상.


20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삶의 무대를 옮겨 해외 파견 근무지로 가족을 데리고 떠났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시나리오가 발생했다.

현지에서 세 번의 이직을 하는 동안, 떠나고 적응하고 생존을 위해 달리기를 반복하는 동안 그 고단함과 긴장감은 한편으로는 살아내는 힘이 되었지만, 또 한편으로 그 무게의 강도가 매우 셌다. 견뎌내야 했다.


그러나 그 삶의 무게감도 다 내 욕심이 부른 것이었다.

이래도 저래도 어차피 인생은 후회와 미련이 남는 것이라면, 후회와 미련이 좀 더 적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사는 동안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그러나 설령 지금보다 더 적은 후회와 미련이 남는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똑같은 번뇌로 괴로워하고 있을 것 같다.

늘 비교의 대상은, 지금 상황에 비해 더 나은 상황이 비교 기준이 될 것이기에.

그래서 유행가 가사가 더 가슴에 와닿는 것은 아닌지.


"아름다운 것도 즐겁다는 것도 다 욕심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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