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면서 나를 지탱해 주었던 것이 과연 무엇인가 돌아보고 싶었다.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그냥 달려온 삶이 아니었는지 반성하면서 진지하게 나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싶었다.
2년 전 해외에서 일과 삶을 정리하고 귀국하기로 마음먹고 이삿짐을 정리하다 청춘의 흔적을 간직한 두 개의 과거 유물을 발견했다.
하나는 결혼하기 전 썼던 일기장과 다른 하나는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사회 초년생 때 읽었던 자기 계발서적이었다.
일기장은 결혼하면서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부끄러운 이야기들이라 누구에게 들킬까 봐 서류봉투에 봉해서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것을 30년 가까이 지나서 꺼내 읽어보게 되었다.
국내에서 해외로 그리고 해외 현지에서 이도시 저도시로 옮겨 다니며 유목민 생활을 하느라 중요한 한국의 부동산 서류도 잃어버린 상황에서 일기장은 용케 살아남았다.
긴 시간을 건너뛰어 다시 펼친 일기장은 그리 낯선 것도 아니었고 더더군다나 부끄러운 것도 아니었다.
이상했다.
20대 때 내가 나를 본 시각은 유치하고 부끄러우며 어딘지 모르게 모자란 데가 많은 그런 하자투성이의 존재였는데 그때 심정을 옮겨 적은 일기장을 읽어보면 지금의 나와 많이 닮아 있다. 어쩌면 그대로인 듯했다.
20대 때 읽은 책들 중 버리지 않은 책은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 '한번뿐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등 다소 통속적인 제목의 유명하지 않은 책들이지만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인생의 초입에서 그래도 삶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했던 책들이라 버리지 않고 있었다.
책을 펼쳐 빨간펜으로 밑줄 친 부분들을 읽어보면 이 역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아마 우리는 인생이 무언가 내가 모르는 매우 거창하거나 어마어마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란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고 살아가지만 사실은 평소 하는 생각들 그리고 행동들 그러한 조그만 것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20대와 지금 50대 후반의 나는 매우 닮아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이 헬조선이라 부르며 어려운 현실을 각고의 노력으로 살아내고 있고, 나와 같은 세대의 중년은 은퇴를 맞아 또 다른 헬조선이라 부를 만한 새로운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어렵고 힘들다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고 힘든 것이 우리 삶인 것 같다.
그러나 조그만 일상들이 모이고, 소소한 사건들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 같다.
그다지 거창하지 않다.
그런 거창하지 않은 평범한 삶이지만 지난 시간의 조각들을 모아 돌아보고 글로 쓰면서 나는 치유의 시간을 얻고, 혹시 이 글을 읽은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말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하고 브런치 글을 썼다.
현역으로 일하던 삶을 멈추고 다음 여정을 준비하면서 매우 좋은 작업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없고 오히려 더 커진 듯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지난 시간을 돌아본 시간이 주어짐에 감사하며, 오늘 이 순간도 자기 자리에서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이 시대 모든 청춘, 장년, 중년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