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샹그릴라

이상향

by 로맹 제이

히말라야 언저리 고산 지대에 작은 마을이 하나 있다.

정식 행정 명칭을 가진 도시지만 자그마한 산동네 같은 느낌이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붉은 수행복을 입은 수행자들이 그들의 수행과 일상의 삶을 살고 있는 사원들이 즐비하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수장이며 종교 지도자인 그는 웃는 얼굴의 온화한 미소를 늘 머금고 있다.

중국의 핍박을 피해 1950년대 후반 티베트 정부 인사들과 함께 험난한 히말라야를 넘어 옆나라로 피신하여 피난처를 요청했고, 다행히 히말라야 언저리 조그마한 도시를 그들의 피난처로 받았다.


2010년 봄

평소 티베트 종교에 관심이 많아 공부하고 있던 아내가 아이들과 나를 히말라야 그곳으로 이끌었다.

비행기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이라 서둘러 공항으로 이동해서 티켓팅을 하고 보딩패스를 받았다.

보딩패스까지 받았는데 비행 편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워낙 자주 발생하는 곳이라 큰 일도 아니지만 마음이 급해졌다.

사과를 해도 마땅찮을 상황에서 퉁명스럽게 취소되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대체 항공편이나 시간대를 이동해서 출발하겠다는 등의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항공사 직원들은 그저 태평스럽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 기사를 불러 차를 타고 여정을 이어갔다.

차로 10시간 걸리는 거리를 아이들도 힘들다 투정 부리지 않고 갔다.

착하고 대견스러웠다.

8시간 정도 지나니 평지가 사라지고 산악지대가 시작되었다.

산길을 차로 올라 천길 낭떠러지가 옆에 버티고 있는 비포장 도로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고 나서, 저 앞 산등성이에 마을이 어렴풋이 보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천둥번개가 몰아 치며 어두워진다.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늦은 밤 숙소에 도착했다.


그 도시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어렵게 이루어졌다.

그 도시를 처음 마주했던 다이내믹했던 그 장면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티베트 종교지도자가 주관한 행사에 참석해 그의 말을 듣고 영혼의 평안을 찾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도 그 무리의 일원이 되어 영혼의 안식을 찾고자 했다.

미국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도 그 무리 속에 있었다.


해외 현지에서 정신없이 일하는 동안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며 바쁘게 일상을 살다, 히말라야 산등성이 조그만 마을에서 열린 종교 행사 참석은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40년 넘게 사는 동안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지만, 그때 경험으로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을 처음 갖게 되었다.


그렇게 이틀에 걸친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던 중 아내와 잘 아는 수행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티베트 종교 지도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어서 오라고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잠이 덜 깬 아이들을 데리고 헐레벌떡 사원 본당으로 향했다.

검색대를 통과해서 다른 나라에서 온 순례자 무리의 뒤편에 자리 잡고 앉아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마지막에 질문 시간이 주어졌고 다행히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인간사의 큰 부분인, 사람 사이 이해관계 충돌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으로 힘든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가 준 답은 매우 간단했다.

"정직하게 일하고 걱정하지 마라.

걱정해서 일이 해결된다면, 중국에 잃어버린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는 엄청난 걱정을 했겠지만, 걱정이 문제를 절대 해결해주지 않는다."


'걱정할 시간이 있으면, 그 걱정할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부지런히 하라'라는 말로 이해했고, 지금까지 그 말을 간직하고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노력은 하고 있으나, 쉽지 않다.

걱정은 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주변의 현란한 물질적, 정신적 유혹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거기에 흔들리는 나를 보며 아직도 갈길이 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그나마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 수 있다는 의문을 갖고 그것을 숙고하는 사는 동안 어느 정도 믿음이 생긴 듯하다. 이것이 소위 종교인들이 말하는 영적 성장의 조그만 과정이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거울을 보면 예전과 다른 나이 든 모습의 또 다른 나가 서있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와 재정적 고민,

화려한 치장을 한 새 아파트들이 주변에 쉴 새 없이 들어서는 도시의 현란함,

그리고 그 빌딩 숲 속에서 느끼는 공허함.


이런 것들이 인간을 더 외롭게 만드는 정신적 고통의 원인이겠지만, 정작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은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 도시 방문이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매일 매 순간 눈앞에 나타나는 현란한 현상들과 그로 인해 생기는 오만가지 생각과 유혹과 싸우며, 40대와 50대 중년을 보냈다.

그의 말 한마디가 나의 40대와 50대의 삶을 밑에서 떠받쳐준 정신적 힘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에서 한 발 물러나 현상의 실상을 볼 수 있는 여유 또는 테크닉


15년 전 티베트 종교 지도자와 같이 찍은 가족사진은 지금도 내 책상 앞에 놓여 있고, 나를 언제나 그 이상향으로 데리고 가고 있다.


*샹그릴라티베트 불교에 전승되는 신비의 도시 샹바라(Shambhala, 香巴拉)에 기초하고 있다. (출처:위키백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