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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미지의 세계로

50대를 맞으며

by 로맹 제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20대는 여전히 방황하는 시간이었고,

30대는 멋모르고 달렸으나, 인생을 대하는 나름의 힘과 배짱을 키웠으며,

40대는 여전히 뭣도 모르면서 인생의 내공이 어느 정도 쌓였다고 착각하며 제 잘난 맛에 살았다.

그리고 그 찬란했던 40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

10여 년 전, 새로운 미지의 50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사람의 인생이 어찌 이렇게 빠른 속도로 흘러갈 수 있는지 정말 의아했다.


지난(至難)했던 40대를 보낸 후 이제 서서히 내리막길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현지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운이 좋았다.

아이들이 교육을 다 마치지 못했으니, 현지에서 교육을 마치는 것을 목표로 계속 달려야 했다.

그러나 한번 지나간 40대는 되풀이될 수 없고, 이미 그 젊은 시절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은 아빠의 세심한 손길을 받을 새도 없이 커가고 있었고, 두어해 동안 아내 혼자서 다른 도시에서 오롯이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있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외로움을 감수하고, 아이들 교육을 마쳐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면 그 교육의 끝에는 찬란한 아이들의 미래가 펼쳐지리라 믿으며 홀로 낯선 도시에서 변형된 형태의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 결과를 받아 들었을 때, 인생은 결코 내 바람대로 되는 법이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인생을 대할 때 항상 겸허해야 할 이유가 많다.


무지하여 오만을 떨면서 찬란했던 40대라고 스스로 자화자찬했지만, 지나고 보면 인생을 대할 때 한없이 겸허해야 할 이유가 너무 많음을 알게 된다.

삶은 항상 다른 모습으로, 예상치 않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내 앞에 그 얼굴을 들이민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이제 어떡할 거냐고.


항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지만, 삶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에 계속 답해야 했다.

그 질문에 답하고 선택하면서 그가 던지는 질문과 씨름하면서 앞으로 나가야 했다.

그렇게 삶이 여러 모습으로 던지는 질문에 답하면서 지나온 40대를 돌아보면 참으로 찬란했다.

말이 좋아 찬란이지 처절했다는 말이 더 맞는 표현이 아닐지.


자발적 이직을 하고, 타의적인 해고를 당하고, 그리고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그렇게 40대 10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을 삶의 에너지로 삼아, 삶의 현장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면서 눈물 젖은 빵도 많이 먹어 보았다.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시련과 고난의 시간들 속에서, 풀리지 않는 일과 삶의 문제들과 씨름하면서, 하늘에 대고 외쳐도 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화풀이, 넋두리는 혼자 삭여야 했고, 그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고 이야기할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오롯이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할 가장으로서의 삶의 무게였다.


해외 현지 사업장의 현장 리더로서, 오롯이 혼자 그 책임감이라는 짐을 지고 걸어갈 수밖에 없다.

현장의 속성은 고독 그 자체였다.


그래서 삶의 속성이 '고독'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인간 각자의 삶이 다 나름대로의 처절함이 있으리라.

나의 40대 역시 눈물과 피땀으로 처절했지만, 찬란했다고 표현하고 싶다.


찬란했던 40대 10년이 저무는 것을 보면서, 타지 낯선 도시에서 일하며, 홀로 식사하고, 독서하고, 산책하고, 명상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삶은 그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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