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변화'의 측정 도구일 뿐이다.
차를 타고 가다, 혹은 거리를 걸어가다,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을 우두커니 지켜본다.
그 장면들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한 장면이 사라지고 다음 장면이 이어지며 쉴 새 없이 변하고 있다.
이것들이 과연 무엇인지 의문에 잠긴다.
아마 실존에 관한 인간이 가지는 근본적인 질문이지 않을까.
인간이 태어나 사는 동안 누구나 적어도 한 번쯤 갖게 되는 질문이지 않을까.
빠르게 질주하는 차동차들
바쁘게 갈길을 재촉해서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횡단보도 옆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
그 옆에 우두커니 서서 바람에 일렁이는 잎과 나뭇가지들을 달고 있는 가로수
그 장면 뒤에 배경으로 펼쳐진 빌딩숲과 파란 하늘과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
이 모든 것들이 과연 무엇이기에 이렇게 내 앞에 연출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화려했던 젊음을 뒤로하고 인생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정신적 여유가 생겨서 혹은 사색할 시간이 넘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상념이라 생각도 해보지만, 태어남과 죽음사이에 펼쳐지는 그 많은 장면들은 도대체 무엇인지.
내 눈앞에 펼쳐진 장면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누가 뭐라든 상관없이 전혀 개의치 않고 변하고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서, 제대로 된 인간의 삶을 시작했다.
경제적 활동을 하는 인간으로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30년을 쉼 없이 일하며 달렸다.
취직하고 가족을 이루고, 해외로 무대를 옮겨 20년 동안 일하고 생활하며,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려고 노력했고, 재정적 성장을 도모했으며, 한국에 계신 부모를 봉양하고, 그렇게 해외에서 일한 20년을 마무리하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왜,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살았는지 돌아본다.
그런 상념에 젖고 고뇌에 빠져 50대의 마지막해를 맞고 있다.
인간의 삶을 시간단위로 구획을 나누어 마디 짓고, 그 마디마디를 돌아보며 무엇을 했는지 회상하는 것도, 시간이라는 도구가 있기에 가능한 행동이다.
'시간'
거침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나는 어떤 상태였으며, 무엇을 하며 살았나.
사회에 나가 경제적 활동을 시작한 20대, 결혼하고 가족을 이루며 진정한 독립을 선언한 30대, 인생의 전성기로 생각했던 40대를 지나 인생 후반부로 접어드는 50대의 끄트머리에 서 있다.
20대의 나와 50대의 나는 그다지 먼 시간으로 구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20대의 나는 50대의 나와 아주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
사실 시간이란 것은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단지 변화만 있을 뿐이다.
태어남도 죽음도 변화의 한 형태일 뿐이지 않나.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나이가 먹고 육신이 노쇠해지고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를 인식하고 설명하려다 보니 인간이 시간이란 도구를 만들었겠지.
시간은 쉴 새 없이 흐르고, 기다렸던 그 시간의 흐름 끄트머리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우리 인간은 괴로워한다.
나 역시 그런 습성을 반복하며 괴로워했으며, 지금도 그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내가 원하는 행복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정작 그 시간이 되고 보니 무지개 쫓듯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허망함을 느낄 때, 혹은 설상가상 기대했던 것과 180도 다른 결과물을 받아 들었을 때, 인생을 되돌아보고 자신에게 실존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50대의 마지막해가 나에게 그런 시간으로 다가왔다.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며, 나름의 생각을 정리했다.
시간은 없으며 변화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내 마음대로, 내 기대대로 안되었다고, 괴로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내 앞에 펼쳐지는 모든 장면들을 사랑하고 변화를 위해 도전하며 살아낼 뿐이다.
지난 30년 동안 변화를 스스로 만들었고, 변신을 거듭하며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았으며, 지금 이 순간 펼쳐지는 번뇌 또는 상념들 역시 변화의 과정이라고, 이 과정들은 내가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뿐이다.
삶은 사랑과 도전이 전부다.
어느새 겨울이 떠나고 봄이 오는가 싶더니 낮에는 여름을 느끼게 하는 더운 날씨가 간간이 이어진다.
우주는, 자연은, 나는, 우리는, 쉴 새 없이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