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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강 Dec 28. 2022

오대수 論

광고 크리에이터 교본 12.

영화 <올드 보이>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왜 15년을 가두어 두었을까... 가 아니라

왜 15년 뒤에 풀어 주었을까를 생각해 보란 말이야.

틀린 질문을 하니까 틀린 대답이 나오는 거야.


그렇다.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장 마리 드루의 <Disruption>을 나는 이렇게 요약한다. <단절>은 더 나은 질문을 하는 기술이다,라고. 아이디어는 ‘의심’하는 데서 시작된다. 일단 의심하고 그 의심을 좋은 질문으로 바꾸어라. 제대로 된 질문 하나를 찾으면 그 피티는 풀은 거라고 봐도 좋다. 의심하는 사람, <Disruptor>는 또 다른 말로 '파괴자'로 번역된다. 있는 질서를 파괴하는 것, 그게 크리에이터다, 일단은.


가만있어 봐... 꼭 그렇게 생각할 것만은 아니지, 맨날 세탁기에 넣는 생각을 하니 빨래로 보는 거지. 그래, 빨래이기 이전에 옷이라구, 아껴 입는 옷! 어떤가... 그 흔해 빠진 세탁력 얘기 말고 다른 스토리가 있을 거 같지 않은가. 오래오래 입고 싶어서, 든 뭐든. 광고를 觀點의 싸움이라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어디를 바라보느냐가 이미 절반이다.

 

바보는 누군가 금을 그어 놓으면  마냥 그 안에서 논다. 금을 밟으면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누군가 만들어 놓은 어젠다를 내 것인 양 싸안고 산다. 남이 짜 놓은 프레임이라는 어항 속에서 마냥 평화롭다. 제 자산은 까맣게 잊고 부채의 전쟁을 수행한다. 바보 크리에이터는 말 그대로 형용모순이다. (Oxymoron ; Oxy 날카로운, Moron 바보)


오대수는 오늘만 습한다는 뜻이다.

정신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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