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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강 Jan 02. 2023

가르마 論

광고 크리에이터 교본 27.

"야, 그래 가지고 가르마가 타진 다고 생각하냐?" 


그대들 중역이나 CD가 그런 얘기할 때가 있지. 그 얘긴 즉슨, 어디 조금 고쳐서 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첨부터 다시 생각하라는 말의 다른 표현인 거다. 헐, 절망할 시간이나 있으면 좋겠다. 얼른 생각의 물꼬를 다시 터보자. 포지셔닝을 한다는 것은 線을 긋는다는 것이다. 선을 긋는다는 것은 유효한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유효한 질문을 한다는 것은 관점을 바꾼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싸잡아 일컬어 우리는 속칭 <가르마를 탄다>고 한다.

 

왜... 꼭 그렇게 하란 법 있어?

가만, 꼭 그렇게 생각할 것만도 아니지

자, 한 번 생각해 봐 


괜찮다. 아무리 사소한 의심일지라도. 그것이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그 무언가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면, 사소한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면, 비로소 희미하게나마 끝이 보이는 거다. 남들이 애써 그어 놓은 굵은 선을 허무는 것과 동시에 남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도 쉽게 허물 수 없는 견고한 선을 긋는 일, 광고 크리에이터는 공격과 수비가 한 가지다.

 

바꿔주는 컴퓨터로 선을 그으면 남는 것은 안 바꿔주는 컴퓨터뿐이다. 대한민국 1%라고 선수를 쳐버리면, 졸지에 나머지는 억울한 99%가 된다. 천연 암반수 맥주라고 풍장을 떨면 졸지에 남들은 찝찝한 맥주가 되어버린다. 남이 그어 놓은 선 안에서 놀며 행여 금 밟고 죽을까 봐 괴로워하던 과거는 잊어라. 이제부터는 그대가 그어 놓은 금 안에서 남들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좋은 포지셔닝은 너의 敵들을 불편하게 한다. 때론 완전 빡치게 만든다. 


포지셔닝은 멀쩡히 잘 있는 애들을 흔들어 놓는 것이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아무도 없는 땅에 가서,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을 깃발을 꽂고 이제부터 내 땅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까칠한 선배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고 싶은가? 많은 연봉, 찬란한 잡 캐리어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대답은 한 가지다. 가르마를 잘 타 보라. 나는 다만 가르마 방향을 바꿨을 뿐인데 적들은 화병에 죽는 수도 있다. CD가 뻑이 가는 수가 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고 노래한 건 함민복 시인이었다. 모든 관습(convention)의 끝자락에 비로소 크리에이티브의 꽃이 핀다. 세계와 세계를 가르고 관습과 비전의 틈새를 뚫고 피어오르는 찬란한 단절의 꽃, 전복의 열매, 크리에이티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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