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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강 Jan 30. 2023

코끼리 사슬 論

광고 크리에이터 교본 48.

코끼리를 묶는 데는 얼마나 센 밧줄이 필요할까?


다 커서 어른이 된 코끼리를 묶어 놓는 데는 새끼 때부터 매어 놓았던 가느다란 쇠사슬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다만 물리적 힘의 크고 적음이 아니라 힘없던 시절의 기억에 박힌 상흔이 여전히 힘센 어른 코끼리를 제압한다는 얘기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거다. PTSD다.

 

시절을 막론하고 젊은 크리에이터들은 재기 발랄하다. 세대가 다른 만큼 생각도 다르다. 잘 키우면 모두가 훌륭한 CD가 될 것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젊은 크리에이터들에게 쇠사슬을 채운다. 사수가. 팀장이. 기획파트가. 중역이. 광고주가. 직급에 밀리고 갑을 관계에 눌리고, 월급에 목 매이고 식구들이 발목 잡고, 점점 눈치 보고 복지부동하고, 꿈을 잃고 의욕도 희미해져 간다. <거짓된 합의>를 강요받는다. 그러면서 점점 늙은 코끼리가 되어 간다. 누군가 아이디어를 사주고 좋은 말로 때로 북돋아 주거나 적절히 프로모션 시켜주지 않는다면 이 멀쩡했던 아기 코끼리들은 대부분 관습적으로 늙어 가게 된다. 그게 겉늙은 사람 코끼리다.

 

선배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사람이란 누구든 조직에 들어서는 순간 알게 모르게 자진해서 쇠사슬을 차게 된다. 스스로 찬 족쇄도 무겁거늘 어찌 자꾸 거기에 보태려 하는가. 틈만 나면 나는 대로 기회가 닿으면 닿는 대로 자꾸 풀어줘라. 말이라도 좋게 해 줘라. 사소한 아이디어라도 가끔 사주어라. 아니면 왜 아닌지 속이라도 시원하게 이유를 설명해 주든지. 不立文字여서 염화시중을 시전 할 거면 소주라도 개카로 한 잔 사든지. 혹시 아냐? 나중에 후배 덕에 먹고살게 될지. 억압과 검열은 크리에이티브의 적이다.

 

후배들이 깨달아야 할 게 있다. 혹시 스스로 쇠사슬을 핑계 대며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쇠사슬이 아니라 스스로의 소심함이 자기 발목을 묶고 있는 건 아닌지. 트라우마를 표 내고 살아봐야 진상 소리 밖에 더 듣겠는가. 자신의 포텐셜은 먼저 자신이 믿어야 한다. 믿고 질러라.

 

길들여진 코끼리는 아무 데도 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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