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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강 Feb 07. 2023

뚝배기 論

광고 크리에이터 교본 53

곰탕 뚝배기에 담아낸 냉면은 과연 냉면인가 냉면이 아닌가?

 

느닷없이 백마비마(白馬非馬)의 궤변론(?)을 공부해 보자는 얘기가 아니다.  아시다시피 광고는 크게 두 개의 덩어리로 가른다. 클레임과 스타일이다. 쉽게 얘기해 보자. 김장훈의 노래가 클레임이라면 김장훈의 발차기는 스타일이다. 이 둘이 합쳐져서 김장훈이라는 가수의 퍼포먼스가 비로소 하나의 기호로 작동한다. 속칭 트레이드 마크이자 일종의 Big Association으로 소통하게 된다. 이쯤 되면 <김장훈>은 당당한 하나의 <브랜드>로 탈바꿈한다. 의미는 형태라는 날개를 달아 비상하고, 형태는 의미라는 두 발을 딛고 땅에 선다. <새 날아간다>는 비판은 뭣도 없이 스타일이 저 혼자 튄다는 뜬금없음을 까대는 말이고, <광고가 착하다>는 칭찬은, 뭔 뜻인 줄은 알겠는데 지루하기가 교장 선생님 말씀 같다는 비아냥이다.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의미가 없으면 재미는 신기루다.

 

文質彬彬(문질빈빈)이란 말이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바탕이 꾸밈을 이기면 야(野) 해지고, 꾸밈이 바탕을 이기면 사(史 ; 奢와 같은 뜻으로 이해된다) 해진다. 꾸밈(스타일)과 바탕(클레임)이 조화를 이룬 뒤에야 군자라고 할 수 있다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논어, 옹야>"  文은 스타일이자 꾸밈이요, 質을 클레임이자 바탕으로 이해하면, 質勝文(바탕이 꾸밈을 이김)은 문채가 부족한 상태로서 문장은 조야하고 생동감이 떨어지니 좋은 문장이라고 할 수 없다. 반대로 文勝質(꾸밈이 바탕을 이김)은 내용은 공허한데 언사만 화려하고 요사하니 이 또한 좋은 문장이라고 할 수 없다. 쉽게 말해 내용과 형식이 겸비되고 균형이 있어야 좋은 문장이라는 말씀이시다. 광고 표현이라고 다를까.

 

메시지 근본주의자들은 일단 클레임을 완성하고 나면 스타일은 하나의 선택사양이나 플러스알파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솔직히 이 바닥이 여전히 똘똘한 토픽 하나 건지는 것만으로도 대충 비빌 언덕이 생기는 게 사실이고, 내 생각에 나를 비롯한 올드보이들이 정작 스타일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탓도 있다. 문화적으로 빈곤한 시절을 관통할 수밖에 없었노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들 이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어디 노래가 곡 하나 좋다고 다 되는 시절인가. 어림없다.


역으로 스타일리스트들은 뭐가 됐든 일단 눈에 띄고 봐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반복해 얘기하지만 메시지가 없는 스타일은 아비정전이다, 발 없는 새라는 말이다. 그 어디에도 영토를 갖지 못하는 다만 아름다운 것으로 착시되는 飛行 일뿐이다.

 

의미(core message, claim, topic, concept)와 스타일은 한 그루의 연리지다. 서로가 대체 불가능한 하나의 절묘한 합(合 )을 이루어야 한다. 스타일이란 그저 클레임의 외연을 꾸미는 장식이 아니라, 오로지 그것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필연의 무엇이다. 기껏 메시지 잘 뽑은 거 같은데 왠지 뭔가 아쉬운 작품을 용서하지 말라. 게으름에 다름 아니다. 그대가 부족하다면 뛰어난 스타일리스트를 돈을 주고 써서라도 뒷심을 발휘할 일이다. 그게 이상하게 맨날 딱 한 끗 차이거든. 익스큐션은 시나리오보다 크다.


곰탕 뚝배기에 담아낸 냉면은 냉면이 아니라, 잘못 만들어진 곰탕일 뿐이다. - 김언수의 ‘낯설게 하기 論’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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