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행 02
봄이온지도 모르게 봄이 왔다. 금년 날씨가 4월까지 요란해서일까 봄이 와도 예전만치 설레는 마음도, 싱숭생숭한 마음도 들지 않아 벚꽃구경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 그저 동네 개천을 조용히 거닐 생각뿐이었지만 어느새 벚꽃 명소로 소문난 불광천은 사람들로 인산인해가 되어버려 그마저도 계획에서 접었다.
4월 한동안은 '벚꽃이 뭐길래 사람들은 벚꽃구경을 다닐까, 다 귀찮다.' 하는 자조적인 마음뿐이었는데 그간에는 봄바람이 분 것이 아니었을까 4월 막바지 봄바람이 불자마자 벚꽃이 지기 전 반차까지 내고 나는 양재천까지 카메라를 들고 벚꽃구경을 가는 기행을 하게 되었다.
양재천은 처음 가보는데 양재천 벚꽃길이라 따로 나있을 만큼 그 길에 들어서니 실로 '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도심 속에 자리 잡은 벚꽃, 정리되지 않은 전선, 벚꽃을 보느라 점심시간에 천천히 걷는 직장인들과 행인들의 풍경이 카메라를 열심히 누를 수밖에 없었다.
양재천에 들어서자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렇게 평일 점심에 많은 사람들이 벚꽃을 보기 위해 나왔다고? 나는 의아함과 동시에 사람들은 생각보다 귀엽다 생각했다. 쭉 이어진 벚꽃길을 그저 걸으며 들리는 얘기들은 오로지 우거진 벚꽃나무에 대한 감상뿐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이렇게 큰 벚꽃나무로 자라는데 몇 년이 걸렸을까. 하늘도 보이지 않게 빽빽한 벚꽃나무들이 터널을 만들었음에 그저 놀랄 뿐이다.
양재천 윗길을 벗어나 개천가까이 걷고 싶어 개천 아래로 내려가니 사람이 조금 한산했다. 답지 않게 추웠던 4월이 이날은 햇볕이 따뜻해 덥기까지 했다. 겉옷을 벗고 들고 다니는 사람들과, 귀여운 강아지들의 산책.
개천을 따라 한동안 걸었을까, 바람이 거세게 불며 벚꽃 잎이 흩날렸다. 다 큰 어른도, 이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애기들도 날리는 벚꽃 잎을 잡으려 다들 뛰어다녔다. 이 풍경을 안 보고 산 것도 아닌데 새삼 생경해 보이는 풍경같기도 해 셔터스피드를 올려 여러 장을 찍어대었다. 벚꽃 잎이 너무 작은지라 잘 찍혔을까 싶은데 콘서트에서 날리는 컨페티처럼 잘 찍혔구나. 사진을 보정하면서 안도했다.
푸릇푸릇한 풀들도 꽃들을 하나둘씩 피어낸다. 초록이 가득함에 별사탕처럼 뿌려져 있는 흰꽃들이 벚꽃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수수하게 자기 역할들을 열심히 해내고 있다. 봄이 왔다고 열심히 알리고 있는 거지, 어쩐지 그래서 화려하게 담은 벚꽃보다 이 사진이 더 맘에 들었을까.
개천을 따라 손을 맞잡고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고, 신발과 양말을 벗은 채 봄 햇살을 즐기며 책을 읽는 이들도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계절을 맞이하는 풍경들. 그 속엔 어쩐지 따뜻함이 묻어나고, 봄을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느껴진다.
벚꽃은 올해도 어김없이 피었다. 매년 같은 자리에서, 그래서 굳이 봐야 하는 풍경도 아니라 생각했고, 벚꽃으로 봄을 맞이함이 유난스럽다 생각했지만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바람에 날리는 꽃잎을 쥐고 싶어 따라 걷다 보면, 봄이 왔다는 사실이 조금은 실감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