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슬픈 변화

우정의 결말

by PNE




우리는 작은 원룸을 구해 같이 살았다.

처음 빨래를 했던 날은 세탁기를 가지고 한참을 씨름했다. 세제를 넣는 곳을 몰라 세탁기에 있는 버튼을 모두 눌러보았다. 빨래를 하기까지 2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달려와 성주와 영화를 봤다. 어느 날은 오래된 영화를 어느 날은 액션영화를. 우리는 자기 전에 불을 끄고 누워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은 뭐였어?" 내가 물었다.

"음… 부모님이랑 떨어져 살아야 했을 때?" 성주가 답했다. 성주네 부모님은 성주를 그리 사랑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주는 부모님을 항상 그리워했고 엄마 음식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항상 같은 질문의 대답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지만 성주는 딱히 되묻지 않았다.


"제일 행복했던 날은 언제야?" 내가 물었다.

"너랑 함께하는 지금이지" 성주가 답했다.

나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자주 함께 그림을 그렸고 벽에 하나씩 붙여 놓았다. 그 옆에는 성주가 산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찍은 우리의 아름다운 날들이 걸려 있었다. 집에서 나가고 돌아오는 길에 매일 보며 행복한 순간을 더해 갔다. 이 시절이 아름다운 나의 하루하루가 깨지지 않길 기도했다.


나는 학비를 벌어야 했기에 과외를 시작하고 새벽에는 편의점에서 일했다. 돈을 꽤나 벌어 등록금을 내고도 내가 사고 싶은 옷 한 벌 정도는 살 만큼 벌었다. 나는 처음으로 돈을 쓰는 것에 행복을 느꼈다. 옷가게에 가는 길에 있는 화장품 가게에서 처음으로 색깔이 있는 립밤을 샀다. 이전에 성주가 보던 그 TV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화장품을 소개하던 그 프로그램.

내 것보다도 더 예쁜 색을 지니고 있던 다홍빛에 립스틱도 하나 샀다. 성주에게 줘야지. 얼마나 좋아할까. 너무나 잘 어울릴 거라고 확신했다.

집에 오자마자부터 성주를 기다렸다. 어떤 반응을 보일까 너무나 기다려졌고. 성주는 세상에서 제일 환한 모습으로 좋아해 주었고 바로 발라 보겠다며 늦은 밤에도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발랐다. 행복했다. 성주가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게 너무나 행복했다.




나는 알바가 끝나면 항상 늦게 들어왔기 때문에 성주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지 혹은 일찍 들어오는지 학교는 잘 나가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당연하게도 나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성주는 알바를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공부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더 많겠지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몸이 안 좋아 집에 일찍 들어왔다. 집에는 성주가 있었다. 화장을 하고 있는 듯했다.

"성주야 너 오늘 학교 안 갔어?" 내가 물었다.

"응 몸이 안 좋아서 못 갔어."라고 성주가 대답했다.

대답은 몸이 안 좋다고 했지만 화장을 하고 있던 모습이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나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내 감기기운이 옮은 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편히 쉬지, 어디 나가려고?" 내가 물었다.

"응 이제 좀 괜찮아져서 잠깐 누구 좀 만나고 오려고." 성주가 대답했다.

성주가 '누구'라고 했다. 누구라니 우리 사이에 누구라니. 그런 말은 안 친한 사이에서 말하기 껄끄러울 때 하는 게 아닌가. 성주가 나한테 숨기는 게 있다는 게 마음을 아프게 했다. 누구를 만나는 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다. 머리가 갑자기 아파져 와서 성주에게는 잘 다녀오라고 말한 뒤 침대에 누웠다. 목도 껄끄럽고 미열이 있는 듯했다. 성주에 대한 속상한 마음이 더해져 더 아픈 것 같았다. 내가 믿음직스럽지 못했던 탓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날부터 성주는 자주 늦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 뒤에나 알았다. 그즈음 성주는 학교를 자주 빠졌으며 용돈이 충분했지만 돈을 벌고 싶어 알바를 시작했다는 것을. 한참 뒤에도 내가 속상했던 건 나에게 그 '누구'를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우편을 확인하던 어느 날 성주의 학교 온 우편물을 보게 되었다. 나는 당연히 스스럼없이 우편물을 뜯어 확인했고 거기에는 출석을 채우지 않은 이유로 학사 경고가 내려진 경고문이 있었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성적이 안 좋아서도 아니고 출석 일자를 못 채워 학사경고라니 믿기지 않았다. 아마 뭔가 잘못 됐겠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집을 청소하고 성주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날도 어김없이 성주는 늦었다. 12시가 넘었고 새벽 2시가 되어가던 때쯤 현관 전자 도어록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거실로 나갔고 성주에게 들어왔냐고 물었다. 성주는 늦게 까지 안 자고 있었던 내가 신기했는지 반가웠는지 좋아하며 말했다.

"안 잤어? 웬일이야 이렇게 늦게 자고? 안 졸려?"

나는 말했다.

"성주야 학교에서 네 이름으로 온 우편물이 있는데 네가 학사경고를 받았다고 쓰여 있더라"

성주는 말했다.

"... 아 봤어?".

나에게 이것도 보여주기 싫었던 거구나.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에게 말을 하지 학교에 다니기 힘들었다고 나한테 한 번만 말해주지 위로해 주었을 텐데 달래주었을 텐데. 나는 멀뚱이 앉아 있었다. 성주는 부엌 근처에 서 있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고르고 골라 성주가 불편해하지 않을 만한 말을 골랐다.

"전공이 안 맞는 거야? 아니면 학교가 재미없어?"

말을 하고 나서는 생각했다. 이 말이 너무 엄마 같이 느껴지지는 않는지 혹은 대답하기 싫어할까 무서웠다. 나는 내가 하는 말 때문에 성주가 나를 떠날까 무서웠다. 생각보다 쉽게 성주는 말했다.

"놀다가 못 간 거야... 그냥 안 간 거야."

내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정말 사치스러운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내 처지가 너무 비교가 되었다. 나는 등록비를 벌려고 시간을 쪼개서 일을 했다. 성주와 보내는 시간을 만들려고 최대한 과제를 빨리하고 집에 돌아갔고 성주와 나의 사이가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생각도 못했던 학교를 안 가는 일을 성주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했다. 주춤하며 뭔가 잘못한 듯 말했지만 그건 내가 따지듯 물었기 때문이었고 내가 묻지 않았다면 성주는 그 우편물을 보고 담담히 버렸을 것이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마치 내가 성주의 엄마처럼 화가 났다. 내 제일 친한 친구가 성실히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는 게 화가 났다. 마치 내가 잘못 돌보기라도 한 듯 화가 났다.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다.

"요새 엄청 늦게 들어오는 것도 친구랑 놀다가 늦게 들어온 거였어?"

성주는 이번에는 한참을 망설이다 얘기했다.

"남자 친구가 생겼어 남자친구랑 놀다가 오느라 늦었던 거야."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나는 묵혀둔 말을 쏟아 냈다.

"성주야 나 이해가 안 돼. 원래 우리라면 원래의 우리 사이라면 너는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부터 나한테 이야기해 주고 사귀기 시작하기 전에도 나한테 얘기해 줬을 거야. 아니야? 나는 너랑 같이 살고 너의 베스트 프랜드인데 내가 어떻게 그 사실을 몰라? 어떻게 내가 물어보니까 그때 알려주는 거야? 이게 뭐야? 우리 사이가 멀어진 거야? 아니면 나한테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거야?"

성주는 손을 만지작 거리고 땅을 보고 나를 보고 한참을 있다가 얘기했다.

"어쩌다 보니 만나게 됐는데 사귀는 사이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더라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났고 자연스럽게 사귀게 됐는데 시간이 흘러 이렇게 된 거야. 그냥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오늘이 된 거야. 다른 생각은 한적 없어. 미리 말했어야 됐는데 미안해. 네가 서운한 것도 내 잘못이지 뭐...."


나는 이 말은 듣고 그런 생각을 했다. 성주가 남자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난 안중에 없었구나. 나는 성주가 마치 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이상적인 가족. 마치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쫑알쫑알 얘기하는 어린이와 엄마 같은 가족. 힘든 일이던 좋은 일이던 서로 나누며 함께 울고 웃는 그런 가족을 꿈꿨었나 보다.


"아니야 내가 미안해. 내가 너무 따지듯 물었나 봐. 네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다. 남자친구 생긴 것 축하해. 학교는 그래도 부모님과 꼭 상의해 봐. 속상해하실 수도 있으니까."

내가 나의 말들을 수습했다.

"응 그래야지. 학사경고까지 받을 줄은 몰랐어."

성주가 답했다.

나는 여전히 내가 성주에 인생에서 조금 멀어진 게 속상했다. 멀어졌다기보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 조금 구분 지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나도 남자친구 꼭 보여줘!"라고 하고 나는 자러 들어갔다. 성주도 조금은 가벼워진 표정으로 들어갔다. 나는 누워서 생각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 모든 것들에 왜 나는 속상해하고 화를 내는지. 성주는 나의 것이 아닌데 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지 답답했다. 이후에 같이 밥을 먹는 몇 차례 동안 우리는 조용하고 어색한 시간을 보냈지만 금방 웃음이 멈추지 않았고 나는 많은 것들을 물었다. 어떻게 성주가 남자친구가 만나게 되었는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나는 많은 얘기를 들으며 마친 내가 연애를 하는 듯이 재밌었고 또 얘기가 궁금해 지곤 했다. 성주는 그 친구를 어느 술집에서 만났고 같이 온 친구들이랑 얘기하다 보니 친해졌고 정말 자연스럽게 사귀게 되었다고 얘기했다. 성주에게 잘해주고 착하고 말을 잘 들어준다고 했다.


어느 날은 성주가 그 친구의 생일이라고 꽤 비싼 운동화를 사가지고 집에 왔다. 나는 한 번도 신어 보지 못한 엄청 좋은 운동화였다. 나는 잠깐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못 받는 저런 선물을 사귄 지 얼마 안 된 남자친구는 받을 수 있구나. 나는 갑자기 사랑이 위대하게 느껴졌다.

성주는 그 친구가 신발을 엄청 맘에 들어 알려줬다. 성주도 비슷한 선물을 사 함께 신고 다니며 같이 찍은 사진도 보여주곤 했다.

그때쯤 성주와 내가 보내는 시간은 거의 없어졌다. 성주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나는 거의 모든 시간 혼자였다. 나는 마치 성주가 나를 대하듯 할머니가 생각났다. 성주가 재밌게 놀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돌아보면 문득 생각나듯이 성주와 함께 재밌던 내가 외로워 지자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나는 시간을 내 일주일에 한 번은 고향에 내려왔다.


하루는 성주가 보고 싶어 연락을 했는데 그 연락의 답장을 3일 후에 받았다. 한 번은 영화를 보자고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시간이 안된다는 대답뿐이었다. 너의 그 많은 시간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우리가 행복했던 날들은 다 잊은 건지 궁금했다. 나는 나의 삶에 집중했다.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고 발표 대회와 아이디어 대회에 많이 나갔다. 굉장히 바쁜 시간을 보내고 학년이 올라가서는 학생회에 들어갔다. 어려서부터 일을 했던 나는 어디 가서도 일을 잘하는 편이었고 선배들과 후배들의 사랑을 받았다. 나는 잘 적응해 갔고 학교 생활이 재미있었다. 내 삶이 조금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