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은연한 이질감

우정의 결말

by PNE




어느 날 성주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새로 나온 영화가 있는데 같이 보러 가자는 연락이었다. 나는 너무나 좋았고 시간을 맞추려고 과외 시간을 옮기고 편의점 알바를 지점장 님께 부탁했다. 덕분에 다음날을 두배로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지만 괜찮다. 너무 오랜만에 온 연락이 아직 내가 성주의 베스트 프랜드라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자주 가던 피자집에 갔고 피자를 먹었다. 성주는 우리가 피자를 먹는 내내 남자 친구 얘기를 했다. 나는 사실 궁금하지 않았지만 성주가 하는 모든 얘기는 남자친구 얘기 밖에 없었다. 내가 조금 지루한 표정을 짓자 성주는 얘기했다.

"미안해 내가 너무 남자친구 얘기만 했나 봐."

그 이후에도 성주는 남자친구 얘기만 했다. 성주의 인생에 더 이상 나는 없었다.

그러다 성주는 어제 남자친구와 싸운 얘기를 했다. 남자 친구가 자기의 화장이 너무 진하다고 한마디 했다는 얘기였다. 다른 얘기는 다 괜찮아도 자기의 얼굴에 대해 하는 얘기는 참을 수 없다며 화를 내며 성주가 얘기했다. 나는 성주가 왜 나를 오늘 찾았는지 알 수 있었다.


영화가 곧 시작할 시간이 되어서 우리는 상영관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성주의 전화기가 울렸다. 성주는 전화를 받고 온다고 했다. 영화가 시작됐고 나는 성주를 기다렸다. 성주는 20분 후에 약간 붉은 눈으로 나에게 돌아와 남자 친구랑 화해했다고 했다. 영화는 못 볼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아무런 주저 없이 가보라고 했다. 나는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내가 더 이상 성주에게 1순위가 아니라는 것이 받아드려 졌다. 내가 성주에게 남자 친구를 만나다가 시간이 빌 때 그때에 맞춰 보는 사람이라는 것도 이제는 알 것 같다. 혹시나 나를 다시 아껴주고 나를 기다려 주고 나를 먼저 생각해 줄 수는 없을까 기다렸지만 이제 기다리는 나도 더 이상 이전에 우정을 우리가 가질 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적응을 해야겠지. 어른이 되어야 하니까 친구들과 관계에서 서운 함을 들어내면 불편해할 거고 그럼 친구들이 나를 떠나겠지. 나는 절대 내가 서운 한 것을 성주에게 티 내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는 돌아올 곳이 필요한 성주가 내가 필요할 때 나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나는 말 삼켰다. 그리고 이 관계가 틀어지면 더 많은 상처를 받을 사람은 나다. 내가 성주를 더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분명 더 깊은 상처를 받을 것이다. 나는 관대한 척했다. 집에서 만나 나에게 미안했다고 사과하는 성주에게 뭐가 미안한지 나는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에이~ 뭐가 미안해 미안할 것도 많다. 정말 괜찮아 전혀 신경 쓰지 마!"

나는 성주가 마음 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거부했다.

침대로 돌아와 잠을 청하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네가 필요할 때 절대적인 너의 편이 필요할 때 나에게 돌아와 나는 너의 뒤에 항상 서있을게. 나는 다짐했다.


한 달쯤 뒤에 성주의 방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성주는 많이 울었다. 달래주고 싶었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한참을 기다렸다. 문 앞에 성주가 좋아하는 오렌지 주스와 소보루 빵을 들고 기다렸다. 성주는 유독 소보루 빵을 좋아했다. 길거리에 지나다니다 조금만 빵 굽는 냄새가 나면 성주는 소보루 빵 냄새가 난다며 좋아했다. 내가 좋아하는 성주의 모습 중 하나다. 성주는 그렇게 하루 종일 울다가 다음날 거실에 나와 아무 일도 없는 척을 했다. 나는 그 어이없는 연기를 받아 주었다. 씩씩하다고 칭찬도 해주었다. 성주는 3일 뒤에나 나에게 그날의 얘기를 해주었다. 성주가 일주일 전 밝은 보라색으로 염색을 했었다. 자그마치 30만 원이라는 큰돈이 든 머리였다. 머리가 마음에 들었던 성주는 곧장 남자 친구에게로 가 자랑했다.

"너무 예쁘지? 너무 잘 나왔어! 너무 맘에 들어"

그 대답으로 성주의 남자 친구는 별로라는 말투로 이상하다고 했다고 했다. 말을 덧붙여서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그런 색으로 염색하는 거라고 왜 그런 색으로 염색을 했냐고 물었다고 했다. 성주는 상상치도 못한 대답에 충격을 받고 적지 않은 말다툼 끝에 헤어지자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와 울었던 것이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성주가 그에게 주었던 사랑은 정말 큰 사랑이었는데 왜 이런 식으로 취급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치 내가 그런 취급을 받은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얘기를 들으며 나도 눈물이 났다. 내가 사랑하는 성주가 그런 취급을 받는 게 너무 속상했다. 성주에게는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딴에 위로라고 했지만 나는 아무런 연애경험이 없었다. 이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 성주가 행복했으면 바랄 뿐이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 자식을 찾아가 묻고 따지고 가만 두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옥에 가라고 저주했고 성주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길 바랐다.


우리는 다시 시간을 함께 했다. 편의점에서 산 값싼 와인을 얼음 컵에 따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얘기하고 웃고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곧 사라질 행복을 이제는 아는 나는 행복한 날들을 맘껏 즐겼지만 마음에 준비를 했다. 성주가 언젠가 나보다 소중한 것들이 생기면 나는 나의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야지 생각했다. 그날은 아주 빠르게 왔다.

성주는 더 많은 날을 늦게 들어왔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듯했다. 내가 성주의 남자친구의 이름을 헷갈려하다가 기억하지 못할 때쯤 성주는 아주 나쁜 경험들을 많이 겪은 듯했다. 술을 아주 많이 마셨고 힘겹게 집에 들어오는 날도 많았고 술냄새가 많이 나는 남자들 등에 업혀 오늘 날도 많았다. 성주의 옷장에는 점점 짧아져 가는 치마들과 티셔츠가 있었다. 그 옷들을 입고 어디에 가는지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았다.

여러 번 헤어질 때마다 나에게 그 사람들이 얼마나 나쁜 사람들이었는지 성주는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왜 그렇게 나쁜 사람들만 성주의 주변에 모이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더 나은 사람이 있을 거라는 말만 반복했을 뿐.




나는 많은 일들을 했다. 창업동아리에 들어갔고 나갈 수 있는 대회는 다 나갔다. 꽤나 높은 성적을 이뤘고 나는 금세 학교에서 조금은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이룬 것이 맞는지 가끔 생각할 때가 있었다. 그렇게 졸업반이 되었을 때쯤 나는 기업 인터쉽을 하고 있었다. 일은 적성에 맞았고 사람들은 내가 똑 부러지고 사람들을 잘 챙긴다고 칭찬해 주었다. 나는 딱히 제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없어서 사람들에게 서포트를 잘하는 나를 좋아해 주셨던 것 같다.


성주는 어느 날 처음으로 내게 인턴쉽은 어떻게 들어갔는지 물었다. 나는 당연히 해야 하는 준비들만 했다 말했다. 자기소개서 이력서 포트폴리오 이런 것들을 말했다. 성주는 딱히 잘 모르겠다는 눈으로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그래서 기업 홈페이지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나는 성주가 어떤 질문을 하는 건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물었다.

"성주야 너도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 작가가 되고 싶었던 거 아니야?"

성주는 답했다.

"돈도 잘 벌고 사람들이랑 같이 일하고 하니까 좋은 직업인 거 같아서 물어봤어."

나는 성주가 일하는 것에 관심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자주 장을 봐서 음식을 했다. 성주는 음식을 할 줄 몰랐다. 성주는 내가 해주는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먹을 때마다 성주는 너무 맛있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동아리 캠프에 갈 때나 고향에 다녀올 때는 냉동실과 냉장실 가득 먹을 것들을 만들어 놓고 갔다. 혹시나 성주가 늦게 들어와 배고프면 먹으라고 만들어 두었다. 성주는 내가 해주는 음식을 정말 고마워했다. 나는 그 감사해 주는 마음이 너무나 따듯했다. 성주는 대부분 빨래와 청소를 했다. 나는 공평한 가사 배분이라고 생각했다. 성주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아지면서 나는 성주의 집안일을 도왔다 내가 더 많은 시간울 집에서 보내니 이것 또한 공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집안일이 손에 익어서 많은 일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었다. 국을 끓이는 동안 빨래를 돌리고 마른빨래를 걷고 얼려놨던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찬거리를 꺼냈다. 모든 일이 딱 맞아떨어지면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식사를 했다. 앞에는 TV 프로그램을 핸드폰으로 틀어두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나의 삶이 맘에 들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독립한 것 같았다. 혼자임이 무서웠던 시절이 이제는 익숙해져 당연해져 버렸다. 나는 더 이상 혼자임이 무섭지 않았다. 나는 매일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 살았다. 나의 많은 그늘이 내가 최선을 다하는 하루에 많이 씻겨져 갔다. 나는 내가 나의 힘든 시절의 기억들을 행복한 하루들로 바꿔 가는 내가 기특했다. 행복한 날들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내가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간 하루가 모여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