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순수하던 그때는 모든 것이 행복했다.

우정의 결말

by PNE



우리는 중학교 때 만났다.

성주랑 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가 정말 잘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성주는 착하고 순수했고 조금 엉뚱했다. 나는 그 점이 정말 좋았다. 우리는 함께 있으면 너무나 즐거웠고 정말 많이 웃었다. 성주는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다.


할머니는 성주를 정말 좋아했다. 성주는 애교쟁이였고 사랑을 받을 줄도 알았다. 나는 할머니랑 둘이 살아서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친구들이 정말 고마웠다. 할머니한테 살갑게 구는 친구들에게는 정말이지 너무나 고마웠다. 어른에게 따듯하게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다.

할머니와 둘이 사는 삶은 생각보다 어려움이 많았다. 울며 잠드는 날이 많았고 내 인생은 너무 어렵구나 나는 걸 나는 중학생 때 알았다.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우리 집은 정말 어려웠고 나는 하교한 이후에는 항상 알바를 했다.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지 못하는 친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주는 친구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나는 운이 좋게도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 그만큼 열심히 하는 것도 있었고 도시에 살다가 시골로 내려올 때쯤 성적이 급격히 올랐다. 전교 10등 안에 드는 편이어서 항상 선생님들께 사랑을 받았다. 너무 감사했다. 내가 가지고 태어난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공부를 할 줄 아는 머리는 있어서. 공부도 못했으면 막노동을 하며 바로 돈을 벌지 않았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내 친구들은 모르겠지만 살아가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하다. 추운 겨울에도 내가 사준 스웨터만 입는 할머니를 보면 정말 부자가 되어야지 항상 생각한다. 중학생이 되면서 더 이상 신세 한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불평해 봤자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나는 빠르게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점이 할머니를 슬프게 할까 봐 할머니 앞에서는 그저 어린아이인 양 밥투정도 하고 같이 드라마도 보고 했다. 친구들이랑 노는 모든 시간이 할머니께 죄송했다. 할머니와 함께 보내지 못하는 시간들이 죄송했다. 그런 나에게 우리 집에 놀러 와주는 친구는 너무나 소중했고 착한 성주는 나를 항상 배려해 줬다. 성주도 할머니와 살아서 나도 성주네 집에 자주 놀러 갔다. 할머니가 위가 안 좋으시다고 하셔서 갈 때마다 양배추즙을 사들고 갔다.


성주네 집에 놀러 간 어느 날 성주가 보는 TV프로그램을 봤다. 화장하는 방법이 나오는 프로그램이었다. 연예인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화장품을 소개하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물었다. "이거 네가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야?" 성주가 대답했다. "응. 그냥 틀어놔. 챙겨 보지는 않고." 나는 아주 작은 괴리감을 느꼈다. '아 성주는 화장품에 관심이 있구나.' 나는 잠깐 조용히 있었다. 내가 성주에 대해서 모르는 게 있었구나. 그리고 화장품이라니 그 얼마나 사치스럽고 아름다운 물건인가.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화장품이라는 단어. 그 단어조차도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하다. 그런데 성주가 화장품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니. 그걸 나는 몰랐다니. 좀 어색했다. 내가 모르는 성주의 모습이 있다는 그 점이 조금 슬펐다. 이렇게 묻고 싶었다. "어떻게 좋아하게 됐어?", "화장해 본 적은 있어?" 그런데 이 질문들이 너무나도 새로 만난 친구에게 하는 질문이라서 나는 하지 않았다. 딱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성주의 모습이 있다는 게 마치 내가 좋은 친구가 아니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때에 성주는 내가 물어봐 주지 않아 내심 서운 했을까?


우리는 열심히 서로의 자리에서 우리의 삶을 살아냈다. 나는 열심히 공부했고 조금씩 진전이 있는 성적에 아주 기뻐했다. 성주가 비교하며 속상해할까 걱정되어 딱히 얘기를 한다거나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았다. 할머니한테 자랑을 하거나 멀리 사는 엄마께 가끔 하는 전화에 넌지시 얘기하는 게 전부였다. 정말 치열하게 잠을 줄여가며 하는 공부를 했다. 나의 치열한 하루가 남에게 전달될 때에는 한 문장으로 끝나는 게 조금 허무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공부가 좋았다. 내가 노력하면 나에게 그만큼의 성과를 주는 공부가 나는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공평한 것 하나 없는 나의 인생에 공부 하나만큼은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매번 수업시간에는 한 글자 라도 더 듣고 기억하느라 애썼고 쉬는 시간에도 영단어를 외웠다. 점심시간에도 공부를 하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달려가 단어를 외우면서 밥을 먹었다. 늦은 시간에 급식실에 가면 기다릴 필요가 없어서였다. 선생님께 인정받고 할머니에게 미소를 선물할 수 있는 수단이 공부였다.

나는 딱히 예쁜 편도 아니었고 외형을 가꾸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교복 위에 덧데어 입을 좋은 브랜드의 겉옷도 없었다. 친구들은 나를 딱히 좋아해 주지 않았고 매 학년 그리 많은 친구들이 있지 않았다. 나의 모든 여건은 공부를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건이었고 나는 딱히 그것이 싫지 않았다. 쉽지 않은 친구들의 환심을 사는 것보다 공부를 하는 게 더 내 삶에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우리 반에서 왕따가 되었지만 나는 딱히 불편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학교에 다녔다.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나름 잘 그리는 편이었지만 관심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미술용품은 비쌌고 예고에 간다거나 미술학원에 다닌다거나 그런 것들은 내가 얻을 수 없는 것들은 갖고 싶다고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나를 더 이상 초라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여름쯤 학교에 풍경화 대회가 있었다. 나는 풍경화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대회에 참가하고 싶어 신청서를 냈다. 나는 연필을 가져갔지만 모든 친구들은 수채화로 예쁘게 핀 벚꽃을 칠했다. 안타깝게도 내가 연필로 그린 벚꽃은 흰색이거나 혹은 검은색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테두리만 따 그린 나의 흰 벚꽃을 그리며 도화지를 채워갔다.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그리나 둘러보다 옆친구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맙소사!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있다니 놀라웠다. 그 친구는 나에게 어떻게 연필로 벚꽃을 그릴 생각을 했냐며 멋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나는 눈물이 조금 날 것 같았다. 눈이 매웠다. 그걸 알아주었을까 그 친구는 나에게 수채화로 그림 그리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알게 되었다. 성주라는 고급스럽고 독특한 이름을 가진 그 친구는 빠르게 나의 삶에 들어왔다. 친구라는 단어의 정의를 알 것 만 같았고 성주가 나의 친구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우린 대화가 너무나도 잘 통했다. 수업시간에도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제 성주와 나눴던 얘기들을 떠올리면 너무 웃겨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아름다운 분홍색에 수채화 같던 성주는 나의 흰꽃에 색을 더해 주었다. 나는 행복이 있다면 이걸 이 순간을 행복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성주 반 앞에서 성주를 기다렸다. 버스 정류장까지 같이 가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하루 중에 제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오늘도 반에서 어떤 웃긴 일들이 있었는지 쉴 새 없이 떠들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매 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 오늘은 버스가 제발 늦게 와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을 매번 했지만 버스는 한 번도 늦은 적 없이 항상 같은 시간에 왔다.


나는 공부를 했고 성주는 그림을 그렸다. 성주는 당연하게도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따듯하고 순수한 웃음을 사랑하지 않을 사람들은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성주는 내가 어떤 얘기를 해도 깜짝 놀라 하며 ‘그랬어?’, ‘어머어머 왜 그랬데?’ 하며 항상 잘 들어주었다. 나는 성주의 호들갑이 너무나 귀엽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성주가 항상 너무 고마웠다. 이 행복이 끝날까 혹은 성주가 날 더 이상 친한 친구로 여겨주지 않을까 고민하는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고민이 무색하게 우리는 더할 나위 없는 베스트 프랜드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비슷한 가정환경이었고 둘 다 할머니와 살며 자매가 있었다. 나는 비슷한 환경에서 눈부시게 자란 성주가 존경스러웠다. 난 나의 그늘이 성주의 빛을 사라지게 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렇게 많은 날들이 지나 우리는 여전히 베스트 프랜드로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다. 둘 다 인문고를 가게 되었지만 성주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미술학원에 더 많은 날들을 가게 되었고 방학이면 더 많은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게 되었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주말이면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다. 성주와 나는 연락을 자주 했고 서로 힘들 날이면 꼭 늦은 밤이어도 통화로 서로를 달래 주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많은 시간 같이 보내지 못하더라도 성주만큼은 나를 가족처럼 아껴주고 나를 응원해 줄 친구라는 것을. 물론 당연히 나도 똑같은 마음으로 성주를 응원한다. 원하는 대학에 가고 행복한 삶을 꼭 성주가 살기를. 방학이면 우리는 시간을 맞춰 일주일에 한 번은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만났고 놀이터에서 만나 그네를 타거나 영화를 보러 갔다. 너무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나의 성적은 눈에 띄게 높아지진 않았지만 떨어지지는 않아 그래도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루 저녁에는 성주한테 전화가 왔다. 잘 오지 않는 시간에 온 전화였다. 나는 이 전화를 안다. 늦은 밤, 자주 오지 않는 시간에 오는 이 전화를. 전화벨 소리가 조금은 소름 끼치는 이 전화를. 아빠가 돌아가시던 그날에도 그런 전화가 왔었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성주가 다급한 목소리로 할머니가 아프시다고 했다. 나는 성주를 달래주고 응급차를 불렀다. 같은 시간에 나는 성주에 집으로 갔다. 성주는 걱정이 많은 얼굴로 있었고 성주네 할머니는 조금은 안색이 안 좋으신 얼굴로 소파에 계셨다. 응급차가 오는 동안 할머니의 상태가 호전되어 조치만 간단히 취한 후 구급대원들은 갔다고 성주가 말해주었다. 나는 정말 병원에 안 가셔도 괜찮겠냐고 할머니께 물었지만 할머니는 완강히 거절하셨다. 성주도 걱정 말라며 늦은 시간에 미안하다며 어서 집으로 가라고 했다. 나는 할머니한테 전화로 오늘은 집에 못 갈 거 같다고 전화를 했고 성주와 함께 있었다. 다행히도 토요일이어서 나는 성주와 함께 있어줄 수 있었다. 나는 밤새 성주에게 괜찮다고 걱정 말라고 얘기해 줬고 성주는 늦은 새벽에 잠이 들었다. 내가 성주가 힘든 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날 내가 함께 있어줄 수 있다는 게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성주에 부모님이 멀리서 할머니를 보러 오셨다. 나는 임무를 마친 사람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쏟아지는 잠을 참고 집으로 와 바로 잠이 들었다. 성주와 할머니가 행복하게 저녁을 먹는 꿈을 꿨다. 그걸 보는 내 마음이 너무 행복했다. 나의 소중한 성주가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것도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한 꿈이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학교를 들어갔다. 성주는 전문대지만 서울에 있는 학교로 가게 되어 우리는 같이 살게 되었다. 나는 행복했다. 성주와 함께 보내는 매일이 마치 중학교 때처럼 즐거울 생각을 하니 너무 신이 났고 처음 하는 자취 생활이 좀 설레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