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노랑이를 만난 건 학교 정문 앞에서였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 달중이와 집으로 가는 길에 정문 앞에서 낯익은 삐악 거리는 소리가 들려 둘은 동시에 정문 앞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친구들이 떼거리로 몰려 무언가를 열심히 구경하고 있었다.
소년과 달중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곳으로 달려가 까치발을 하고 들여다보았다.
밀짚모자를 눌러쓴 아저씨가 박스 안에서 삐악 거리는 병아리 서너 마리를 보도블록 위에 꺼내어 놓고 손으로 툭툭 건드리며 애들에게 사라고 꼬시고 있었다.
소년은 잠시 달중이를 쳐다보며 무언의 눈빛을 나누다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둘은 마치 합창을 하듯 거의 동시에 외쳤다.
"그래, 사자"
달중이도 한 마리. 소년도 한 마리.
둘은 노랑 병아리를 한 마리씩 사서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소년은 집이 가까워 올수록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엄마가 살아있는 동물을 데려 왔다고 야단칠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집 앞 슈퍼에서 작은 박스를 하나 주워 병아리를 담아 조심스럽게 뒤뜰 장독대 옆에 숨기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현관문을 열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소년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는 쌀통에 있는 쌀 한 줌을 슬쩍 주먹에 쥐고 뒤꼍으로 향했다.
병아리가 들어 있던 박스를 열고 쌀을 바닥에 조금 뿌려주고 소꿉 살이 그릇을 하나 찾아내 물도 담아 주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가족들과 저녁을 먹었다.
"근데, 뒤꼍에서 자꾸 병아리 소리가 나는데..."
엄마의 한마디에 소년은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리고 단념한 듯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실직고하고야 말았다.
"내가 키울라고 샀다"
다행히 엄마는 소년을 많이 야단치지는 않았다.
"그런 데서 파는 병아리는 잘 못 살긴데. 밥도 니가 주고 똥도 니가 치우고 해라. 알겠제?"
"예, 엄마!"
소년은 동네가 떠나갈 듯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소년과 병아리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소년은 병아리 이름을 노란색이라 노랑이라고 지었다.
다음날 학교에서 만난 달중이 얼굴이 울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달중이네 병아리가 하늘나라로 갔다며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소년은 마치 자기 일인 양 달중이네 병아리의 죽음을 슬퍼해주었다. 그리고 방과 후에 달중이네 집 근처의 병아리 묻은 곳을 다녀오기까지 했다.
소년은 돌아오는 길에 노랑이에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잘 키우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소년의 집에는 작은 텃밭이 있었다. 노랑이는 무럭무럭 자라 텃밭에서 모이도 주워 먹고 햇볕도 쪼이며 잘 자랐다.
가끔씩 길 고양이들이 나타나 노랑이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가 빗자루를 들고 나타나 길고양이를 용감하게 쫓아 주셨다.
6개월쯤 되자 노랑이는 병아리에서 점점 닭의 모습을 띠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노랑이가 하얀 닭이 되어 갔다. 소년은 병아리 이름을 잘못 지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한번 노랑이는 영원한 노랑이라며 이름을 고치지 않았다.
1년이 지나고 노랑이는 어른 닭으로 자라서 머리에 빨간 벼슬도 돋아나기 시작했다.
엄마는 노랑이가 텃밭을 다 버려 놓았다며 화를 내셨다.
그리고 마당 여기저기에 똥을 싸서 냄새도 지독하고 집이 지저분하다며 또 노랑이를 탓하셨다.
소년은 잠결에 엄마가 아버지에게 하는 이야기를 꿈인 듯 들었다.
"노랑이 저거 남 주던지 해야지 이제 못 키우겠심더"
다음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노랑이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에게 노랑이 어디 갔냐고 물으니 모르겠다며 어디 도망간 거 아니냐고 하셔서 소년은 화가 났다.
텃밭과 뒤꼍을 다 돌아다녔지만 노랑이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소년은 해가 져서 어둑어둑 해질 때까지 노랑이를 찾아다녔지만 어디에서도 노랑이를 찾을 수 없었다.
학교에 가서도 노랑이 생각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다음 날도 노랑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소년은 길고양이가 잡아먹었는지도 모른다며 노랑이의 명복을 빌었다.
노랑이가 없어지고 삼일째 되던 날 달중이 엄마가 찾아오셨다. 냄비에 뭐를 담아 오셨는지 엄마에게 주고 가셨다.
그날 저녁 밥상에 닭개장이 올라왔다.
소년은 알고 있었다. 노랑이가 없어진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소년은 저녁도 굶고 방에 숨어서 밤새 꺼이꺼이 울었다.